대한부정맥학회는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부정맥 환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심장 내 삽입 장치(CIED)'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부정맥 환자의 심장에 이식해온 CIED는 원래 환자의 부정맥 정보·신호를 의사에게 보내는 원격 모니터링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원격 모니터링이 불법이라는 점에서 이 기능을 지난 30여년간 아예 꺼두고 사용해온 실정이다. 현행법상 환자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 등 원격 의료를 시행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법 제34조(원격의료)에 따르면 의료인은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 의료인이 환자가 아닌 의료인에게만 원격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단 얘기다. 따라서 의사(의료인)가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거나 치료하는 건 아직 '불법'이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도입하면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란 게 학회의 입장이다. 노태호(가톨릭 의대 명예교수) 전 대한심장학회장은 "병원 밖에서 환자의 심박 이상 징후를 확인한 의사는 환자에게 연락해 빨리 내원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복지부 등 관계부처의 의료법 유권해석으로 이런 시스템이 제한받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현재 복지부는 원격 모니터링에 대해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 진료에 해당하며, 현행법상 불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협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의료계에선 "의협은 회원 대다수가 개원의"라며 "이들이 원격 모니터링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원격 모니터링이 활성화하면 환자들이 동네 의원보다 병원급에 더 몰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학회 김성환(서울성모병원) 보험이사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의 효과와 안전성, 임상적 혜택 등은 해외에서 이미 10건 이상의 무작위 대조 임상 연구에서 입증됐다"고 언급했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환자에게 발생할 뻔한 심각한 부정맥 발생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부적절한 심장 충격을 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심장부정맥학회(HRS)는 지난 2015년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필수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뿐 아니라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현재 일본·싱가포르·대만·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와 서구 각국에서 부정맥 진료의 표준으로 권고하는 추세다. 게다가 원격 모니터링을 넘어 원격 수술도 시도하려는 분위기다. 이미 2019년 중국에선 50㎞ 떨어진 거리에서 돼지의 간 절제술을, 2021년 이란에선 5㎞ 거리에서 개 정관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 바 있다.
이 학회 오일영(분당서울대병원) 총무이사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으로 얻는 심장박동 정보는 전화·화상통신이 아닌 데이터전송장치, 앱을 통해서만 전달되므로 환자가 내원했을 때 얻는 정보와 완전히 똑같다"며 "의료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할 때 좀 더 빠르게 조치할 수 있고 환자의 편의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언제, 어디에 있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외에서 환자의 상태를 24시간 감시해 환자의 빠른 내원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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