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였던 아들에게 '부정한 돈 받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윤 교수는 그 자신부터 한눈 팔지 않던 학자, 원리원칙주의자였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지만 학위는 석사였다. 과거 1950~60년대 때 국내 대학 교수들끼리 동료 학자의 논문만으로 박사 학위를 주는 소위 '구제 박사(논문 박사)'가 유행할 때조차 이를 받지 않았다. 당시 "그런 식으로 학위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윤 교수는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에 코로나19(COVID-19)에 확진돼 병원에 입원했다. 90대의 고령에다가 대통령 당선인의 아버지였음에도 VIP 병동 등 특별 병동이 아닌 일반 코로나 환자 병동에 입원하며 일체의 특혜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부친을 종종 언급해왔다. 윤석열 정부의 상징이 된 '자유와 연대' 국정운영 철학도 부친이 선사한 지식의 자양분 덕분에 뿌리를 내렸다. 청년 윤석열은 윤 교수가 재직하던 연세대 교정에서 인식의 틀을 잡아나갔다. 연희동에 살면서 사법시험 공부도 연세대 도서관을 이용했다.
올해 2월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연세대 신촌캠퍼스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축사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연세 정신을 언급하면서 "연세의 교정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다. 아름다운 연세의 교정에서 고민과 사색에 흠뻑 빠졌고 많은 연세인들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회고했다.
3월 전격적인 한일관계 정상화 과정에서도 부친과 함께 한 시간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윤 대통령은 도쿄에서 일본 기업인들과 만나 "아버지 덕에 왔을 때"라며 일본의 추억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윤 교수가 히토쓰바시대학교 객원교수였던 시절 대학생이었던 자신이 일본 현지 청년들과 어울렸던 경험을 나눴다. 자꾸 만나야 신뢰가 쌓이고 경제협력도 그렇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 자리에서 고향이 히토쓰바시대 근처인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파이낸셜그룹 특별고문이 당장 반색했고 그는 대화를 마치며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이 우리에게 용기를 줬다"면서 한일 공급망 협력을 다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평소 부친과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에서는 직접 부친과 함께 서대문구 투표소를 찾기도 했다. 당시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계 진출을 고민하던 윤 대통령은 부친과 투표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아버님 기력이 예전같지 않으셔서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윤 교수의 노환이 심해지면서 바쁜 일정 중에도 틈이 생기면 입원 중이던 부친을 종종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라'던 평소 부친의 뜻에 따라 국정운영에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3일장을 마친 뒤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자유와 연대를 향한 한미일 정상회의도 예정대로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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