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검찰이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33)의 범행 배경으로 '게임 중독'을 밝힌 것은 K-콘텐츠산업 자체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궜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일 당시 국내 원전 수출이 난항을 겪었던 것처럼, 한국이 '게임 후진국'으로 비쳐질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분투하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위축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며 게임 등 K-콘텐츠의 수출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사건 해석이 이 같은 정부 전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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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검찰 논리 "게임하듯 사람 찌르고 움직였다"━
검찰은 수사팀이 CC(폐쇄회로)TV를 자체분석한 결과 조씨의 범행수법이 슈팅게임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11일 브리핑에서는 "조씨 사건 이후 신림역 살인예고글을 게시한 또다른 피의자도 조씨의 범행장면을 보고 '같이 게임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볼 때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조씨의 행위를 해당 게임과 유사하게 본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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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S게임하면 살인자? 매일 사격하는 군인들은…━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검찰이 게임에 사건 원인을 돌린다는 건 이번 묻지마 칼부림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사건 예방을 위한 조치를 찾지 않겠다는 얘기"라며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군대에서 매일같이 실제 총기 훈련을 받는 군인들은 모두 예비범죄자가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잔혹한 스릴러 영화를 본다고 누구나 다 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살인 계획부터 범죄까지 다 보여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던 사람이 범행을 저지르면 그게 다 넷플릭스 같은 OTT 탓이라고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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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무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다른 취미에 비해 게임은 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속해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자신의 열악한 여건 등을 비관하며 행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사람들이 게임을 취미로 즐기는 경우가 많을 수는 있죠."
다만 이는 '상관관계'일 뿐, 게임 자체가 범행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다. 한순간의 범죄로 인해 잃을 게 많은 부유층의 경우 강력범죄 범행률이 낮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골프를 취미로 즐길 수는 있다. 이때 "골프를 즐기는 이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상관관계는 성립할 수 있다. 다만 "골프가 인성을 함양해 강력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골프를 즐기면서 인성이 망가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다.
검찰의 발표는 '게임'과 '묻지마 칼부림'의 상관관계를 넘어 억측으로 '인과관계'로 끌어올린 결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브리핑에서 "게임중독이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게임중독이 바로 동기라고 하는건 아니고, 범행 직전에 조선의 상태가 게임중독이었다는 것"이라며 모호하게 설명했다. 정작 검찰에 조선의 심리분석을 자문한 전문가들은 "조선의 좌절과 불만이 어떠한 외부 자극에 의해 표출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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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그럴 줄 알았어" 이때다 싶어 성난 이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게임의 폭력 유발' 논쟁이 이미 근거가 없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50년이 지난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며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 한 방송국에서 PC방 전원을 내린 뒤 성 내는 사람들을 보도하며 '게임의 폭력성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고 하던 수준에 머물러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생의 성적 저하의 원인을 찾던 학부모들은 이럴 때 '게임 탓'으로 돌리는 걸 선호할 수 있다"며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검찰 때문에 게임포비아를 조장할 수 있는 이런 발표가 나온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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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쳐진 게임업계 "언제는 수출 효자라면서…"━
이들은 검찰의 '게임중독' 브리핑에서 여전히 보이는 한국 사회의 게임에 대한 몰이해, 뒤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게임규제 논의 등이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산업 전반을 위축시킬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 해외 원전 수주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와 같다. 자국에서는 게임을 '살인 동기' 취급하면서, 이를 잘 포장해 외국에 판매한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양질의 게임을 만들어 공급하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임직원들의 사명감도 꺾일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은 게임 같은 콘텐츠를 집중 육성해 수출을 활성화하겠다는 마당에 수사당국이 쌍팔년도 논리로 업계 사기를 한껏 위축시킨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대학 교수는 "게임관련 학과들의 수시모집이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발표가 나오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 수시모집률이 대폭 낮아진다"며 "검찰의 안일한 발표는 현직 게임업체 직원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원들까지 등돌리게 만들어 게임산업을 위축시키는 개탄스러운 행위"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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