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주 칠하니 여자" 언론도 '떠들썩'…'국내 1호' 성전환 수술[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3.08.13 07:00

편집자주 |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955년 8월 13일. 서울 적십자병원에 한 20대 남성이 입원했다. 2시간여 수술을 마친 그는 남자 병실이 아닌 여자 병실로 옮겨졌다. 국내에서 처음 성전환 수술을 받은 조기철 씨였다. 이로써 그는 한국에서 '성'(性)을 바꾼 첫 인물이 됐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조씨는 보름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곧장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2층에 있는 미용실로 향했다.

난생 처음 펌 시술을 받은 조씨는 당시 유행이었던 웨이브 단발머리로 변신했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당시 언론은 "수술 후 묘령의 처녀가 된 조양은 그동안 입원실에서 신의 섭리를 고요히 생각해 오다가 여성이 된 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겠다"며 자신의 선택으로 성(性)을 바꾼 조씨의 모습을 전했다.

여성의 자태를 한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파마를 하고 분을 바르고 루주도 칠하니 비로소 틀림없는 여성이 되었다", "처녀다운 한줄기 수줍음을 감추고 있었다", "파마로 더욱 이뻐 보이는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몹시 만족한 듯 (웃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군! 아니 조양!"이라며 당장 조씨를 부르는 호칭에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조씨는 조기철에서 조기정으로 개명해 여성으로서 삶을 살았다.



선정적으로 다뤄지던 '성전환'…하리수 이후 달라진 시선


1950년대 당시 '성전환'은 해외토픽에서나 나올 법한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이슈였다. 언론은 조씨의 성전환 수술에도 "인륜대도를 어지럽힐까 걱정"이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성전환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는 곱지 않았다.

성전환을 고민하는 사람은 정신·심리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봤고, 모 신문에선 성전환을 고민하는 한 남성에게 "남성과 흡사한 성격과 외모를 가진 여성을 찾아 교제해 보라", "자꾸만 여성을 대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성전환자를 '정신질환자' '부적응자' '범죄자' 등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또 성전환 수술을 했다 하더라도 바뀐 성별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1989년 7월 5일에야 성전환 수술에 따른 호적 정정을 허가한 첫 사례가 나왔다. 당시 청주지방법원은 부산대 의대 성형외과에서 성 환 수술을 받은 윤씨(당시 나이 22세)의 호적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경하는 것을 허가했다.

모든 성전환자가 성별 변경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의학·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었다.

유방 확대 수술과 남성 성기 절제 수술을 받은 윤씨는 '성염색체이상증'이라고 기록된 진단서를 첨부해 성별 정정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모만 남성이었을 뿐 성염색체 이상증으로 모든 신체 구조가 여성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정정할 수 있었다.


=배우 겸 가수 하리수./사진=뉴스1

성전환자를 둘러싼 논란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성전환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 건 2001년 가수 하리수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다.

하리수는 광고·예능·가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갔고 곳곳에서 용기 있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줄어들었다.



첫 성전환자 나온 지 51년만…대법원 '성별 정정 허가' 결정


/사진=뉴스1

결국 법원도 사회 흐름에 맞춰 변해갔다. 2006년 6월 22일 대법원은 '존엄성, 행복 추구,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며 성전환자가 호적상 성별을 바꿀 수 있게 하라고 판결했다. 국내에서 첫 성전환자가 나온 지 51년 만이었다.

대법원이 2006년 첫 성별 정정 허가 결정을 내린 이후 법원은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을 참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법원은 이를 참고해 기존 성기 제거와 성전환 수술 등을 사실상 허가 요건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최근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이들의 성별 정정을 허가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연이어 나왔다.

2021년 10월 수원가정법원은 생식능력제거수술, 성기제거수술을 받지 않은 여성이 남성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 데 이어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은 성기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것을 허가하는 판결을 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지만 반대 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확고한 점, 오랫동안 호르몬 요법을 해온 점, 사회에서 반대 성으로 살아온 점 등이 고려됐다.

지난 2월 판결 당시 서울서부지법 항고심 재판부는 "외부 성기를 제외한 모든 부분, 특히 정신적 영역에서 여성으로 평가됨이 명백하다면 여성으로 평가함이 마땅하다"며 "성기는 신체 외관 평가의 한 요소일 뿐 (성 정체성 판단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법원은 성별 정정에 있어 성전환 수술은 필수요소가 아니며,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생식능력 박탈 및 외부 성기 변형 강제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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