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계 최고 원전 안전을 위한 리스크 정보 활용

머니투데이 박윤원 前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 2023.08.10 05:52
박윤원 前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원자력발전에 있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는 그동안 안전성을 우선시하면 경제성은 당연히 저하되는 것을 감수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배타적 균형(Trade-off) 관계라는 것.

그러나 미국을 보면 안전성과 원전성능(이용률)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1990년대 70%의 이용률, 연평균 불시 정지가 2.5회로 성능과 안전이 우리보다 낮은 수준이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90% 이상의 이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불시 정지는 0.3회/년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스크(위험도)를 나타내는 노심 손상확률은 1990년대 초반 대비 최근 1/10 수준으로 떨어져 안전성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우리나라 원전은 운전허가 기간이 끝나면 10년 계속운전을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나 주민 수용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초기 40년 허가 기간을 넘어 60년, 일부는 80년까지도 계속운전을 승인받았다. 에너지 안보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미국에서는 국민 수용성을 어떻게 확보했고 안전성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미국의 규제기관인 NRC(원자력규제위원회)와 원전사업자들은 한목소리로 '리스크 정보의 적극적 활용' 덕분이라고 답한다.

1990년 이전에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결정론적 방법, 즉, 사전에 정해진 규칙 및 기준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안전성 확보에 필요충분조건인 것으로 간주돼왔다. 그러나 1960년대 원자력발전소를 처음 설계할 때 기본이 되었던 이 접근방법은 모든 설비를 다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상대적 중요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이에 반해 '리스크 정보'를 활용하게 되면 기기 하나의 고장이 발전소 전체의 리스크를 얼마나 증가시키는지 계산할 수 있다. 설비의 설계개선 및 새로운 기기의 추가, 더 나아가 운전 절차서의 개선 등 각각의 조치가 리스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높은 조치에 우선순위를 두게 함으로써 사업자는 물론 규제자 입장에서도 제한된 자원 내에서 발전소를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 후반부터 규제기관과 산업계의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리스크 정보활용을 강조해왔다. 특히 규제기관에서는 사업자의 선택사항으로 리스크 정보활용을 권장했고, 이에 필요한 평가방법론과 규제지침 등을 개발해 제공·활용하게 했다. 원전 현장에서 과거 종사자들 스스로 규정 준수에만 집착했던 것이 이제는 어느 것이 리스크 관점에서 중요도가 큰 것인지를 판단하고, 이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안전중시환경 즉, 안전문화도 크게 개선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리스크 정보활용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원자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변화가 우선되어야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자리매김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규제자와 산업계가 20년 이상 꾸준히 같이 노력했기에 오늘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국내 원전에서 리스크 정보활용이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규제기관의 적극적인 의지와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 최고경영층의 리더십, 장기간에 걸친 일관된 정책과 종사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에 대한 기대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필요조건인 안전성과 함께 충분조건인 경제성도 잡아야 한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어 리스크 정보를 적극 활용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리스크 정보활용 안전중심 운영(Risk-informed Safety-focused Operation, RISFO) 정책'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박윤원 前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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