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접 접속사로 ‘하지만’만 쓰나요?

머니투데이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 2023.08.07 10:35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단조로운 반복 대신 ‘그러나’ ‘그런데도’ 등 혼용 바람직

편집자주 |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백 국장, 요즘 기자들은 역접 접속사로 ‘하지만’만 써요. 한번 글로 다뤄주세요.”
언론계 지인이 내게 여러 차례 한 ‘제보’다. (전에 활자매체에서 일할 때 내 직급이 부국장이었고, 그때부터 그는 나를 ‘백 국장’이라고 부른다.)

나는 “단어를 반복하지 말라는, ‘기본의 기본’ 지침에 어긋난 사례죠”라면서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답변하곤 했다. 그러면서 역접 접속사로 ‘하지만’만 쓰는 것은 일부 기자들에 국한된 습관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기자뿐 아니라 글을 많이 썼고 좋은 평가를 받은 저술가들도 ‘하지만’만 쓰다시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게다가 편집자를 거쳐 활자매체나 책으로 간행된 글에서조차 역접 접속사를 거의 ‘하지만’으로 채운 사례를 거듭 발견했다.
놀랍게도 최근에는 ‘하지만 순도 100%’인 글도 접했다. 200자 기준 약 17매인 글에 역접 접속사로 ‘하지만’만 썼다. 그 글에는 ‘하지만’이 다섯 번 등장한다. 이번 글의 소재를 ‘하지만’으로 잡은 까닭이다.

도대체 왜 ‘하지만’만 쓸까? 문제를 제기한 지인이 답답해 ‘하지만’만 고집하는 기자한테 물어봤다고 했다. 답변은 “‘하지만’은 구어(口語) 접속사인 데 비해 ‘그러나’는 문어(文語)투이어서”라고 전했다. 이로부터 나는 ‘하지만’ 일색은 언론계 간부들이나 글을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친 결과이고, 그 바탕에는 언문일치에 대한 논리가 있다고 추정하게 됐다.

‘하지만’이라는 실마리는 언문일치라는, 글쓰기에서 반드시 마주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지만’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경직된 언문일치’의 오해를 해소하고자 한다.
‘언문일치’는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법칙이 아니다. ‘언문일치’는 ‘글은 말로부터 너무 벗어나면 부자연스럽고 딱딱해진다’는 조언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바람직하다.

문장에는 종종 문어체가 구사된다
‘언문일치’가 바람직하다고들 하지만, ‘글’과 ‘말’은 곳곳에서 간격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수필이나 칼럼을 우리는 경어체로 쓰지 않는다. 활자매체에서도 그렇게 편집하지 않는다. 또 “그는 내게 지타를 아냐고 물었다” 대신 “그는 내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처럼 약간 문어투로들 쓴다. 대화할 때는 “이 일은 기획부랑 판매부가 함께 대응하세요”라고 말하지만 글로 쓸 때에는 ‘랑’ 대신 ‘기획부와 판매부 공동 대응’식으로 서술한다.

이에 대해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에서 “언문일치라고 하면 대개 구어를 문어로 바꾸는 것을 말하는데, 저는 언문일치의 문장이 반드시 구어를 그대로 구현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언문일치가 꼭 입말과 문장을 일치하자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T.S. 엘리엇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대로 글을 쓰면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쓰는 그대로 말을 하면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음 문장을 놓고 생각해보자.

정부가 1억3000만 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지원하기로 했대’ ‘~지원하기로 했어’ ‘~지원하기로 했어요’ ‘~지원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선언문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문장을 ‘~했다’ ‘~한다’로 마친다.

언문일치 문장의 근거로는 ‘독자에 대한 예의’ 주장도 있다. 전직 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 창간되고 운영되는 인터넷 매체가 있다.
그 매체는 모든 글의 모든 문장을 경어체로 마친다. 활자매체에서 일할 때 문장투를 그렇게 정한 이유를 전해 듣게 됐다. ‘불특정 다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인데, ‘했다’ ‘한다’로 문장을 마치는 형식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명저의 반열에 오른 책조차 대부분 무례하다. 가까이에 있는 아무 책이나 들춰보자. 연설문이나 서한문이 아니라면 경어체로 문장을 마치지 않는다. 심지어 저자 소개조차 평서문으로 서술된다. 예컨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저자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오랜 시간 축구를 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가 한번 직접 해볼까? 싶어 덜컥 축구를 시작하는 바람에 지금은 축구를 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오랜 시간 온갖 주제로 잡다한 글들을 쓰다가 한번 제일 좋아하는 것을 써볼까? 싶어 덜컥 축구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빠른 것 하나로 버티는 축구하는 사람이자 마감 잘 지키는 것 하나로 버티는 글 쓰는 사람. 계속 축구하고 글 쓰고 축구 보며 글 읽으며 살고 싶다.



‘건방지게! 반말로 자기를 소개해?’ 혹시 이렇게 반응하며 읽으셨나? 그런 독자는 1만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으리라. 나도 모든 저자·역자 소개 글을 평서문으로 썼다.
책 전체의 평서문을 두고 “결례”라면서 열을 올린 독자는 없다. 그렇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해마다 불황 신기록을 경신하는 출판계에서 소수 독자로부터라도 불만을 사는 요소가 있다면, 출판사가 고치지 않을 리가 없다. 모든 문장을 경어체로 고치는 출판사가 점점 많아져야 한다.

대다수 활자매체가 문장을 평어체로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으로 돌아온다. 우선 ‘하지만’을 제외한 다른 역접 접속사가 문어투라는 뉘앙스 인식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가 탐탁지 않다면 ‘그런데도’ ‘그럼에도’ ‘그렇지만’ 같은 대안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를 쓰지 않는 필자는 대개 ‘그렇지만’이나 ‘그런데도’ ‘그럼에도’ 등도 구사하지 않는다.
또 설령 문어투이더라도 글에서 피할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문일치’의 맥락에서 설명했다.

다른 역접 접속사로 변화 주어야
이제 ‘하지만’ 문장을 놓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문장은 책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에서 인용한다. 역접 23곳 중 20곳에 ‘하지만’이 쓰였다. 87%에 이른다. 나머지 3곳에만 ‘그러나’가 활용됐다.

밋밋하게 ‘하지만’으로 일관하기보다는 다양한 다른 역접 접속사로 변화를 줘야 한다. 다음 문장들을 읽으면서 ‘하지만’의 대안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100미터 이상 솟은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바람 지도에 나오는 숫자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이아그리드와 코어는 단지 건물이 쓰러지는 것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건물이 흔들리는 것도 조절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류는 자연이 제공하는 재료의 기본 특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건축에 이용해왔다.
-하지만 콘크리트는 까다로운 재료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일 뿐이고 실제로는 거의 이렇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둥들이 대성당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이 기둥들은 1500개의 구멍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추파남은 계속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오래된 빅토리아풍 직사각형 벽돌 바닥이 팔 벌려 환영하는 집에 들어선다.



이 책은 번역본이다. 저자가 습관적으로 구사한, ‘강조’ 등을 위한 다음 ‘하지만’들은 생략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전례없던 일을 했다.
-하지만 내 눈을 가장 잡아끈 것은 핏빛의 붉은 벽돌이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더 멀리 나아갔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층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 추의 진짜 역할은 태풍이나 지진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또 상당수 자리는 역접으로 대충 때워졌다. 그보다 더 적절하게 앞 문장과의 관계를 설졍하는 대안이 가능하다.

[원문] 하지만 그 후 외국인들이 나타났다.
[대안] 그 후 외국인들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원문] 하지만 이 건물은 87층과 92층 사이에 걸려 있는 거대한 강철 추 구조로도 유명하다.
[대안] 이 건물에는 명물이 더 있다. 바로 강철 추 구조로, 87층과 92층 사이에 걸려 있다.
[원문] 하지만 나는 제단 바로 왼쪽 기둥 위에 있는 작은 금속 장식 못에 완전히 혼을 빼앗긴 채 꼼짝하지 못했다.
[대안] 내 혼을 빼앗은 대상은 따로 있었다. 제단 바로 왼쪽 기둥 위에 있는 작은 금속 장식 못이었다. 내 눈길은 그 못에 못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원문] 하지만 타이베이101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안] 그처럼 엄청난 강풍에도 타이베이101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원문] 하지만 20세기에 상황은 달라졌다.
[대안] 20세기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 사례는 국내에 확산된 틀린 글쓰기 지침, 즉 ‘접속사를 가급적 쓰지 말라’는 말이 나온 근거를 제공했다고 본다. 필요하지 않은 접속사와 덜 적합한 접속사가 많이 구사된 사례를 본 사람들이 그런 결과를 피하라며 ‘접속사 금지’로 표현했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러나 접속사는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면 인류가 접속사를 다양하게 만들어 수만 년 동안 활용했을 리가 없다. 역접 접속사도 마찬가지다. 관건은 적절하고 다양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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