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에 실리려고?"…버핏의 '살로먼' 일병 구하기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 2023.08.05 05:18

버핏 워너비를 위한 워런 버핏 이야기⑮

편집자주 |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이번에는 버핏 워너비를 위해, 버핏의 투자와 삶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사진=블룸버그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93)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금은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옛날에는 미국 금융계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무용담도 많은데요, 그 중 최고는 1991년 국채 입찰 스캔들로 파산 위기에 빠진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를 구한 일입니다.

1987년 버크셔 해서웨이는 살로먼 브라더스에 7억달러를 투자해서 최대 주주가 됐는데요. 1991년 살로먼의 국채입찰 조작 스캔들이 터지고 살로먼이 존폐 위기에 빠지자 버핏은 임시 회장을 맡아 워싱턴 정가를 누비며 살로먼을 파산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도 살로먼 이사로 취임해서 살로먼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등 이때의 '살로먼' 일병 구하기는 버핏과 멍거에게 인상적인 경험이 됐습니다.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도 살로먼은 자주 언급되는 단골소재이구요. 참,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당시 재무부 부장관으로서 미국 정부의 살로먼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버핏은 파월 의장이 2020년 3월 코로나 19 위기상황에 훌륭하게 대응했다고 여러 번 격찬했는데, 1991년부터 파월 의장과 인연을 우연찮게 맺었었네요. 버핏의 '살로먼' 일병 구하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살로먼 브라더스의 국채 입찰 조작 스캔들


1987년 9월 버크셔 해서웨이는 살로먼의 상환전환우선주에 7억달러를 투자하며 지분 12%를 가진 최대주주가 됩니다. 매년 9%의 배당금을 챙길 수 있었고 주가가 오르면 보통주로 전환할 수도 있으니 버크셔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는 투자였습니다.

살로먼 브라더스는 월가 최고의 채권 하우스로 뉴욕 채권 시장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일일 거래대금이 80억달러에 불과한 데 비해, 재무부 채권(국채) 시장은 1000억달러가 오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다 1991년 살로먼의 국채입찰 조작 스캔들이 터집니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인수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 딜러(공식 국채딜러)가 1회 입찰에 인수할 수 있는 국채 한도는 35%로 제한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로몬의 채권 딜러인 폴 모저(Paul Mozer)가 고객의 명의를 도용해 발행 물량을 싹쓸이해버립니다.

발각될까봐 초조했던 폴 모저는 채권부문 책임자이던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에게 입찰을 조작한 사실을 고백했고 메리웨더는 며칠 후 존 굿프렌드 살로먼 최고경영자(CEO), 도널드 퓨어스테인 회사 법률고문을 만나 이 사태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퓨어스테인은 허위입찰이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재무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됐습니다. 사실 이때 재무부에 보고만 했어도 큰 탈없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굿프렌드가 주저하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결국 재무부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먼저 국채입찰 조작사실을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하면서 살로먼과 굿프렌드는 위기에 빠집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가한 워런 버핏/로이터=뉴스1
버핏은 2017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굿프렌드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대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CEO는 그 기미를 알아챕니다. 바로 그 순간 CEO는 반드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살로먼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4월 28일 살로먼의 CEO, 사장, 고문 변호사는 회의실에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존 메리웨더는 부하 직원 폴 모저가 어리석게도 재무부를 대상으로 사기 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실수가 아니라 악의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국채에 대해 허위 매수주문을 제출했습니다."

"그날 회의 참석자들은 일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이 사실을 뉴욕 연준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CEO는 보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보고하지 않고 뒤로 미루었습니다. 5월 15일 국채 경매가 열리자, 폴 모저는 또다시 대규모 허위 매수주문을 제출했습니다. 경영진은 알면서도 상습 방화범의 범행을 막지 못했으므로 이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상황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부당행위를 발견한 순간 CEO가 곧바로 저지하지 않은 탓입니다."

굿프렌드는 사임을 결심하고 워런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서 개입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사실 버핏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살로먼을 조용히 묻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버핏은 상환전환우선주에 투자했기 때문에 살로먼이 청산되더라도 돈을 잃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핏에게는 돈 대신 잃을 게 있었는데 바로 신뢰였습니다. 살로몬의 최대주주인 버핏은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정합니다.



버핏의 '살로먼' 일병 구하기


결국 버핏은 뉴욕으로 날아가서 살로먼의 임시 회장직을 맡았으며 미국 정부와 살로먼에 대한 협상을 벌입니다. 당시 니콜라스 브래디 미국 재무부 장관, 제롬 파월 재무부 부장관이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버핏은 살로먼의 대차대조표가 1500억달러에 달하며 대부분을 단기자금으로 조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살로먼은 매일 5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롤오버(만기연장)했고 이중 살로먼의 명의로 보증되는 금액은 10억달러였습니다. 만약 자금 만기를 연장할 수 없다면 살로먼은 얼마 안 있어 파산할 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브래디 장관은 살로먼의 국채 입찰 자격을 박탈했다가 몇 시간 뒤 마음을 바꿔 살로먼이 회사 고유 계정으로 국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살로먼이 간 발의 차이로 살아난 거지요.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한 질문자가 살로먼 때문에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할 뻔 했는지 묻자, 버핏이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1991년 8월 중순 일요일 살로먼에 있던 우리는 30분 이내에 연방법원 판사에게 파산 서류와 열쇠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은 파산서류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파산보호신청을 지시했던 재무부가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만일 살로먼이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공교롭게도 같은 날 고르바초프가 행방불명됐고 다우지수는 수백 포인트 폭락했습니다. 이튿날 일본시장이 열렸을 때 살로먼이 증권 양도 등을 이행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게다가 살로먼이 보유한 파생상품 계약은 무려 6000억~700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1991년 재무장관이었던 브래디는 당일 아침 살로먼에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다행히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버핏은 만약 브래디 장관이 번복하지 않았다면, 살로먼은 파산보호신청을 했을 것이라며 말을 끝맺었습니다.


돈을 잃을지언정, 평판을 잃어서는 안된다


1991년 9월 4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워런 버핏의 증언 장면/사진=C-SPAN 홈페이지 캡쳐
1991년 9월 4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버핏은 살로먼이 법률을 완전히 준수할 것을 증명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 후 살로먼의 새로운 비전에 대해 생생한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다음날 지방신문 1면에 실려 배우자와 아이들, 친구들이 읽기를 바라는지 자문해보길 권합니다. 직원들이 이 말을 따르고 행동에 옮긴다면 제가 그들에게 보내는 다른 메시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저는 회사가 돈을 잃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평판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버핏은 약 9개월 동안 살로먼의 회장을 맡으면서 '살로먼' 일병을 구해냅니다. 나중에 폴 모저는 재무부에 거짓말을 했음을 인정한 후 감옥에서 4개월을 복역하고 110만달러의 벌금을 내고 증권업 종사를 영구적으로 금지당합니다. 살로먼의 CEO였던 굿프렌드는 벌금 10만달러를 내고 다른 증권사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약정에 서명합니다.

참, 부하직원인 폴 모저 때문에 살로먼에서 해고된 존 메리웨더는 헤지펀드업체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을 설립합니다. LTCM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파산위기에 처하면서 월가를 붕괴직전으로 몰고 갔지만, 미 연준의 주도하에 월가 은행이 3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LTCM에 제공하고 간신히 금융위기를 막아냅니다.

버핏의 살로먼 투자는 1997년 트래블러스그룹(현 씨티그룹)이 90억달러에 살로먼을 인수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7억달러를 투자했던 버핏의 몫은 약 17억달러였습니다. 성공한 투자로 끝나긴 했지만, 버핏이 다시 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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