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림자 규제'가 '킬러'다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3.08.01 02:25
# '독서실 남녀 혼석 금지 사라진다'. 지난달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대표적 규제개혁 사례다. 독서실 남녀 혼석 금지 조례(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2월 나왔지만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조례를 유지해 왔다.

이 규제는 독서실에만 적용되고 유사업종인 스터디카페에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규제라도 피규제자 입장에선 고통이다. 생업을 흔든다. 좌석이 비어있어도 성별 규제 때문에 손님을 받을 수 없다. 규제를 위반하면 10일 영업정지다.

뒤늦게나마 없애기로 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한편에선 웃프다. 저런 규제가 실제 적용되고 있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니까 말이다. 규제 개혁 사례는 역설적으로 규제 국가의 고해성사인 셈이다.

# 규제 완화·규제 개혁·규제 혁신. 문민정부 이후 30년간 정부의 역사는 규제 개혁의 역사다. 언제나 최우선 과제로 '규제 개혁'을 내세우지만 '규제 개혁·혁신' 정부로 기억되는 정부는 안타깝게도 없다.

규제 개혁은 그만큼 어렵다. 규제를 만드는 정부가 규제 개혁의 주체라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 조직을 만든다. 인력을 투입한다.

규제개혁위원회·규제개선추진단·규제개혁신문고·규제혁신전략회의·규제혁신추진단·….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리곤 규제 실명제(김영상 정부), 규제 기요틴(김대중 정부), 규제 총량제(노무현 정부) 등 규제 관리 기법을 고안한다.

규제 일몰제·규제비용 총량제·규제순응도 조사·규제샌드박스등 혁신적 규제 관리 기법이 만들어진다. 그 기법은 다시 혁신된다. 규제 자체보다 규제 관리가 개혁·혁신되는 아이러니다.

# 어느새 규제 개혁·혁신의 자리를 '규제 관리'가 차지한다. 규제영향분석제도를 보자. 새로운 규제가 어떤 비용을 발생시키고 그 규제가 만든 규제 편익이 비용보다 적은 지 여부를 평가하는 제도다.

실증적 효과가 있는 규제만 만들도록 하겠다는 게 취지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규제가 기업과 자영업자를 어느 정도 힘들 게 하는지 계량화하긴 쉽지 않다.

체력이 제각각인 사람에게 모래주머니가 주는 부담이 모든 다르듯 하나의 규제는 피규제자에게 다양한 층위로 다가간다. 누구에겐 따끔할 정도의 손톱 밑 가시에 불과할 수 잇지만 누군가의 기도(氣道)에 걸린 가시일 수 있다.


게다가 규제는 획일적이기에 모두에게 '공평'하다. 규제가 자리 잡으면 버틸 수 있는 소수만 규제 차익을 누린다. 규제는 기득권자를 만들고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 카르텔은 모래주머니와 가시를 보호한다.

# 그나마 관리 기법에 걸리는 규제는 항변이라도 가능하다. 피규제자들은 쉴새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당장 뽑을 수 없는 '대못'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개혁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속 규제 완화를 외친다.

성과가 없지 않다. 윤석열 정부 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규제, 대형마트 영업 규제 개선 등 해묵은 규제가 풀렸다. 반도체 입지 규제 완화, 광양 포스코 공장 신설 등도 규제 혁신의 대표 사례다. 1년동안 1027건의 규제를 개선해 70조원의 경제효괄르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잖다. 실제 경제 주체를 옥죄는 '그림자 규제' 때문이다. 그림자 규제는 행정지도, 고시, 가이드라인 등 그럴싸한 이름으로 유령처럼 곳곳을 누빈다. 명문화되지 않은 채 법령의 해석과 집행 과정에 숨어있다.

그림자 규제를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에, 피규제자는 벌벌 떤다.

정부가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고시·가이드라인 등 최하위 법령 단위에서 규정하는 '밑바닥 규제'를 전수조사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는데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모든 부처가 나서 '킬러 규제'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데 그림자 규제가 진짜 킬러 규제다. 번식력은 놀랍고 생명력은 강한 '킬러'다. '킬러'는 지난주에도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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