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뜬지 1시간만에 '펑'…111명 목숨 앗아간 최악의 이 사고[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하수민 기자 | 2023.07.19 05:30

편집자주 |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추락 직전에 찍힌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빨간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손상된 곳이다. /사진=미국 수시티 공항 CVR 영상 캡처

1989년 7월 19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출발해 필라델피아로 비행 중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 후미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기체 2번 엔진이 굉음을 내며 폭발한 것. 순식간에 296명이 탄 항공기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조종 불능상태가 돼버렸다. 부기장은 조종간을 쥐고 요동치는 기체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조종실 시스템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장이 직접 조종에 나섰으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더 기울어졌고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베테랑 조종사들의 기지로 기체는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에 겨우 비상 착륙했지만 착륙 직후 화염에 휩싸이며 파괴됐다. 이 사고로 296명 중 185명이 생존했지만 111명이 목숨을 잃어, 유나이티드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항공 사고로 남게 됐다.


이륙 1시간 만에 터져버린 엔진…구원투수처럼 등장한 일등석 탑승객


사고 당시 232편을 조종했던 조종사들. 왼쪽부터 앨 헤인스 기장, 빌 레코즈 부기장, 더들리 드보르작 항공기관사, (승객으로 탑승했다가 엔진 추력 조절에 큰 도움을 준)데니스 피치 기장.

사고가 발생한 1989년 7월 19일 오후 2시쯤, 232편은 286명을 태우고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에서 출발해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향한 비행을 시작했다.

이륙 후 1시간 10분 정도 지난 오후 3시 16분쯤. 항공기 후미에서 폭발음과 함께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이 동력을 상실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엔진출력 조절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이끌던 헤인스 기장은 총 비행 경력이 3만 시간이 되는 숙련된 파일럿이었다. 레코즈 부기장 역시 50세 전에 2만 시간의 비행경력을 채운 실력자였다.

헤인스 기장은 유일하게 조절할 수 있는 1, 3번 엔진 추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좌우 엔진의 출력을 서로 다르게 해 방향을 바꿨고 양쪽 엔진의 출력을 높여 고도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의 고도는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널뛰기하듯 기체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추력 조절의 미세한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 곧바로 추락할 수 있는 불안정한 비행이 지속됐다.

그때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일등석 탑승객 데니스 피치가 조종에 도움을 보태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베테랑 기장이자 조종법 훈련 교관인 데니스 피치는 당시 4년 전 일어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와 관련해 유압 계통 손상 시의 조종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초당 1회 의사소통'…흔들리는 기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파일럿들


사고 당시 232편의 항적. 사진/=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는 232편의 사고원인 보고서

베테랑 기장의 합류로 드림팀이 된 조종사들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의사소통하면서 기체를 이끌었다.

이들은 불시착 직전의 34분 동안 기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비행기의 손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 어떻게 착륙할 것인지, 승객들에게 안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급할 때는 1초마다 한 번씩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렇게 베테랑 기장들의 빠른 상황판단과 기지 덕분에 점차 조종 불능이던 232편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던 중 관제탑에서 교신이 왔다. 아이오와의 시외 공항(수 공항)에 비상착륙을 하라는 교신이었다.

연료가 남으면 비상착륙이 폭발할 수 있으므로 232편은 연료를 버리면서 착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엔진만으로 조종했기 때문에 232편은 300km/h가 넘는 속도로 착륙했다. 결국 착륙 중에 오른 날개가 부러진 이후 미끄러지며 조각났다.

사고 직후 엔진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기체 후미에 타고 있던 탑승자가 다수가 질식사했다. 하지만 유압 상실 사고라는 큰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의 분투와 공항구조대의 신속한 구조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111명 사망' 최악의 사고…사고가 남긴 것은



사고 나흘 후인 1989년 7월 23일 찍힌 꼬리 부분 잔해. /사진= 유튜브 캡처

미국 교통안전위원회가 사고 이후 조사한 결과 사고의 원인은 정비 불량으로 드러났다.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의 팬 블레이드가 운항을 거듭하며 노후화되면서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항공의 정비팀이 이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DC-10의 제조사 맥도넬 더글라스는 유사시 유압 계통의 전체 손실을 막기 위해 퓨즈를 설치해 유압 상실 시에도 일부 장치는 작동이 가능하게 했고 항공기 제작공정을 개선했다.

항공사들은 승무원의 의사소통을 중요시하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기체를 무사히 공항까지 이끌었던 네 명의 조종사는 착륙 당시 충돌로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조종실과 함께 떨어져 나갔으나, 35분이 지난 시점에 소방대에 구조돼 전원 생존했다.

이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민간 항공과 관련된 최고의 훈장인 폴라리스 상을 수여 받았다.

한편 데니스 피치 기장은 추락을 막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탰음에도 112명의 승객을 구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사고 이후 사흘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앨 헤인스 기장은 사고 이후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다.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딸의 수술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소식을 들은 232편의 생존자들이 수술비를 모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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