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영화' 위기…'K-작가' 홀대가 원인이다[우보세]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 2023.07.19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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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이 30일 오후 경기 부천시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진행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특별전 '최민식을 보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내달 9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2023.06.30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영화 '범죄도시 3'가 개봉 32일만인 1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진은 2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점의 범죄도시3 포스터. 2023.07.02.
한국 영화와 영화관이 위기라고 한다. 팬데믹 기간 적자와 최근 수요정체로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들 한다. CGV 유상증자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CJ가 'K-영화'산업 성장에 기여한 걸 감안하면 곱게 봐줄만도 한데 시장은 냉정하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좋지 않다.

언뜻 보면 K-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이 식은 듯 하다. 하지만 K-관객은 영화광들이다. 2013년 영화관객 연간 2억명을 돌파한 뒤로 코로나 이전 2억명을 계속 상회했다. 인구 5000만 나라에서 1년에 영화를 2억회 이상 관람한 게 한국이다. 관객수로는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중국·미국·멕시코·프랑스 등에 이은 세계 6위 수준이다. 마블영화가 세계 첫 개봉을 한국에서 하고 할리웃 스타들이 K-팬들을 자주 찾는 데엔 이유가 있다. K-영화시장은 나라 규모에 비해 굉장히 크다.

K-영화·영화관 위기에 대해 누군가는 관객의 발길이 뜸해져서라 분석한다. 엔데믹인데도 예전만큼 관객이 몰리지 않는단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과일 뿐 원인으로 볼 수 없다. 마치 사망직전 '패혈증'이나 '심정지'를 사망 원인으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얘기다.

'창작'에 대한 '홀대'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2억회나 관람하는 K-영화관을 지탱하는 건 K-영화였다. 관객 과반을 한국영화가 차지해왔다. 천만 관객 K-영화도 줄줄이 이어졌다.

K-영화·영화관 위기는 관객이 '안' 와서가 아니라 '볼' 영화가 없어서 시작됐다. '볼' 영화가 없는 이유는 특히 재밌게 만들어진 K-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볼 만한 '시나리오'부터 부족해지고 있다. '범죄도시' 2편이 코로나 중에도 천만을 넘겼고 3편도 연속해서 천만 관객을 넘겼다. 재미있는 영화가 걸리면 관객은 분명히 온다.


영화 등 영상콘텐츠를 위한 '글'을 쓰는 작가는 한정돼 있다. OTT에 돈이 몰리면서 영화 시나리오가 OTT 시리즈용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2시간짜리 시나리오를 에피소드 8개의 6시간짜리 시리즈로 억지로 늘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짜임새있던 줄거리는 어느새 지루한 내용으로 바뀌고 영화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던 글이 OTT에선 중박이거나 망한 시리즈가 된다. 이래선 영화판도 망하고 길게봐선 OTT로 간 작품들도 망하기 쉽다. 볼만한 영화가 영화관이나 OTT에서 줄어든 건 우연이 아니다. OTT로 돈은 몰리지만 국내에서 제작할 수 있는 영상콘텐츠 창작의 양엔 한계가 있다. 특히 양질의 시나리오는 많지 않다.

최근 영화제작사가 시나리오 작가의 감독 '입봉'을 미끼로 '글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아 논란이 됐다. 영화사는 해당 작가의 또 다른 시나리오를 아예 영화사 것인양 저작권 등록을 하기도 했다. 문제된 돈은 겨우 5000만원이다. 글값이 너무 싸다. '아이디어'에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한국 특유의 잘못된 관행이 시나리오 시장에도 남아 있는 듯 하다. 창작자에게 제대로 된 돈을 줘야 한다. 시나리오는 한 두달 안에 쓰는 게 아니다. 작품 질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간 노동으로 치면 몇 년치 연봉을 주는 게 맞다. 지금같은 환경에선 글 쓰는 창작자가 늘어날 수 없다. 배우에겐 수억, 수십억원을 기꺼이 주면서 영상콘텐츠의 원천인 '글' 창작자에겐 너무 짜게 준다.

'글' 창작이 있어야 영화사도 제작을 하고 배우도 연기를 할 수 있다. 관객이 안 온다고 징징대기 전에 K-작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자. 그래야 글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영상콘텐츠를 위한 창작도 늘어난다. 그것이 K-영화와 영화관이 살 길이다.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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