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말 못 해" 입 꾹 닫은 中반도체…방첩법에 '이중고'[중대한說]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 2023.07.14 15:02

재갈 문 중화, 입 닫은 반도체①- 중국

편집자주 |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전 세계의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반간첩법(反??法)의 취지를 설명하는 포스터. / 사진 = 닝샤 국가안보국

"저희 회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고객사의 모든 문의에도 적극적으로 답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2월 15일)

"죄송하지만, 해외 매체의 문의에는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7월 14일)

상하이에 본사를 둔 한 반도체 회사의 답변이다. 5달 만에 답변 내용이 180도 반전됐다. 그간 이 회사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역량을 홍보하기 위해 국내외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왔으나, 외신은 물론 해외 고객사와의 대응마저 꺼리게 됐다. 지난 1일 시행된 '방첩법'(반간첩법 개정안)의 영향이다. 핵심정보는 물론 공개된 정보라도 외국의 기관, 조직, 개인에게 제공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국가핵심기술이 대거 포함된 반도체는 특히 요주의 대상이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중국 반도체가 또 한 번 발목을 붙잡혔다. 국가 안보를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개정된 방첩법이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머무르는 외국 기업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해외의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다. 올해 1분기 주요 반도체 기업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내는 등 주춤해진 '중국 반도체 굴기'가 다시 한 번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입 닫고 마스크 썼다…갈 길 바쁜데 논의조차 못 하는 중국 반도체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통상 중국 반도체 기업·관계자는 질의 응답을 꺼린다. 자신의 이름이나 회사명이 달린 답변이 언론·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객사와의 협상 과정도 비슷하다.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논의가 이어진다. 보안 유지가 반도체 업종의 필수 덕목으로 꼽히는 것은 맞으나, 유독 중국의 경우 팹리스(설계 전문)·파운드리·디자인하우스 등 모든 업종이 입을 꾹 닫는다.

방첩법이 시행되면서 중국 반도체업계를 둘러싼 만리장성은 더 두터워졌다. 베이징과 상하이, 션젼의 주요 반도체 기업 5곳에 주력 제품과 실적 추이 등을 문의한 결과 4곳이 답변을 거부했다. 답변을 보내온 베이징의 패키징(후공정) 기업도 "홈페이지에 공개된 것 외에는 정보 공개가 어렵다"라며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공시자료와 관련된 답변도 꺼렸다.

기업의 소통 방해는 중국 공산당의 입법 취지와 동떨어져 있다. 중국 정부는 방첩법이 기업은 물론 언론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외국 언론인이나 기업인들의 활동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법과 규정을 준수하는 한 (처벌을)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국 기업은 물론 자국 기업도 방첩법을 의식해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이같은 조치는 중국 기업 내부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번 분기에도 실적 악화가 확실시되는 중신궈지(SMIC), 장디엔커지(JCET), 징바오롱(션젼 롱시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도 악재다. 해외 고객사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입을 막아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중신궈지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 후 "씬피엔(칩) 매출과 가동률이 지속 감소하고 있다"며 "시장 지향적이고 고객 중심적인 전략 수립이 필수"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방첩법이 중국 내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제약해 경제 후퇴를 불러올 것이라고 점친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방첩법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범죄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중 일본상공회의소는 자국 기업들의 영향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크레이그 앨런 미중 기업협의회장은 "방첩법 적용은 중국 시장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떨어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첩법 무서워 투자 못해"…가시화된 '차이나 엑소더스'


반간첩법(反??法) 이미지. / 사진 = 중국 최고인민법원

시진핑 총서기(국가주석) 연일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방첩법이 철회되거나 완화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왕루어(사이버) 보안 조치가 강화되고 있어 반도체 업종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도 추방되거나 벌금을 물 수 있는 판국에 중국인은 말할 나위도 없다"라며 "회사 홈페이지의 정보로도 덤터기를 쓸 수 있어 전면 재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투자도 철회될 가능성이 크다. 뤼펑위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중국은 계속해서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게 법률에 기반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주중 유럽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 내 주요 기업들이 방첩법의 시행 이후 본사를 중국 밖으로 옮기고 있으며, 투자도 축소하고 있다. 엄격한 보안 통제조치와 더딘 경제성장률이 악영향을 줬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안팎의 우려에도 경제 성장을 자신한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 철회 이후 올해 경제성장률을 글로벌 평균(IMF, 2.9%)보다 높은 5%대로 제시했다. 제1목표는 내수 촉진과 수출 확대다. 중국 제1금융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중국 경제가 차츰 회복되고 있다"라며 "꾸준한 투자 성장과 소비 확대가 하반기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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