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가슴에서 '삼성배지'가 사라진 이유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3.07.13 06:00

[오동희의 思見]

2분기에도 이어진 삼성전자 실적악화 속에서 지금 삼성 내부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자신감 상실 △소통실종 △미래전략 부재 등 세가지다. 삼성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과거 삼성 신입사원이 '자부심(pride)'으로 달고 다니던 '삼성 배지(badge)'는 일부 금융계열사를 빼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시대의 변화도 있지만 로열티와 자부심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특히 사업보국이라는 사명감에 신바람 나게 일하던 그 기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삼성 직원들이 달고 다니던 과거 배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2분기 연속 수조원의 적자를 낸 때문이 아니다. 그룹 전체 분위기가 위축돼 있다.

삼성은 현재 그 어느 그룹도 달성하지 못한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꼴찌 그랜드슬램'(4관왕)을 하고 있다. 야구(10위), 축구(12위), 농구(10위), 배구(7위) 등 전 분야에서 꼴찌다.

회사 브랜드를 가슴에 달고 하는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직원들의 아침출근길 비타민이고,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저녁의 해우소(解憂所)다. 삼성 직원들 중엔 차라리 스포츠단을 매각해 응원 대상을 없애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다는 얘기까지 한다. 스포츠단에선 과거와 다른 지원 부족을 얘기한다. 1등 DNA를 강조하던 삼성에서 꼴찌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다.

스포츠 뿐만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잘나가던 삼성서울병원이 국내 5대 종합병원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의 의료질 평가에서 '1등급-나'를 받았다. '1등급-가'를 받는 5대 메이저 종합병원에서 탈락했다. 삼성전자가 늘 차지했던 국내 기업 영업이익 1위의 자리는 올 상반기에 현대자동차에 내줬다.

한 때 모든 분야에서 1위를 독차지해 '삼성공화국'이라는 비난에 힘들어하며 '1등 포비아(공포증)'에 시달렸던 삼성이 이젠 자신감마저 상실했다. 이것이 현재 삼성 내부 분위기다. 스포츠는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전직원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같이 뛰는 분위기가 기업의 성장을 이끈다. 지금 삼성에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감 회복이다.

자신감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 많은 대화와 격려가 필요하다. 올바른 소통이 팀워크의 핵심이고 자신감의 열쇠다. 최근 삼성 내 소통 실종은 끊임없이 지적돼 온 문제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제대로 된 '날(生) 것의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 이 회장이 제한된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다. 문제는 회장보다 앞서 2~3번씩 먼저 보고를 받고 이를 걸려내는 시스템에 있다.

사전에 걸러진 정제된 내용만 들어서 좋을지 모르지만 현장의 민낯이 아닌 잘 포장된 보고는 죽은 정보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살아있는 정보를 취득해야 정확한 현실을 판단할 수 있다.

일례로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3년간 추진했던 파운드리 기업의 인수가 왜 무산됐는지,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임원이 왜 갑자기 인사조치되고 집에 가야 하는지 등 현장의 '살아있는 얘기'들이 이 회장의 귀에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 듣기 좋은 얘기만 듣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일본 파나소닉의 미션인 '250년 계획' 프리젠테이션 자료/자료제공=파나소닉

소통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위기는 언제든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 제한된 의사결정자의 최종결정은 위험하다. 이 회장이 사전에 짜여지지 않은 현장소통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삼성에 절실한 세번째 과제는 미래 준비다. 삼성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당장 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서히 무너질 뿐이다. 전자산업의 선구자였던 미국 RCA가 그랬고, 모바일의 강자 스웨던 노키아와 디스플레이 넘버1 일본 샤프가 그랬다. 영원한 1인자는 없다. 미래를 준비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

일본 파나소닉은 지난 5월 18일 '그룹전략'을 발표하면서 1932년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밝힌 비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물질과 정신을 풍족케 하는 이상사회' 실현을 위해 250년(25년x10) 후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미션이 그것이다.

250년의 허황된 먼 미래는 아니더라도 10년 이상의 전략은 있어야 한다. 한 때 삼성에도 10년 계획이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삼성글로벌리서치)가 100명 가까운 인력을 투입해 단기(1년), 중기(5년), 장기 플랜(10년)을 만들어 대외비로 CEO들에게만 공유했었다. 최근엔 이런 미래전략이 사라졌다.

미래 준비가 덜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재판 중인 이재용 회장 본인의 미래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 준비가 제대로 되겠나 싶다. 다음 주면 99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시장에선 어떤 빠른 결론이든 장기적인 불확실성보다는 낫다고 본다.

사실 현재의 반도체 어려움은 쉽게 극복될 수 있다. 시장의 흐름을 잘 타면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What's the next?"

이 질문은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창업의 모티브이자, 지금의 인텔을 있게 한 도전정신을 상징한다. 지금 이 질문에 삼성이 내놓을 답은 마땅치 않다.

'삼성의 다음은 무엇인가'.

마땅한 답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삼성의 미래 인재들이 가까운 장래에 자신들의 가슴에 자랑스럽게 '삼성배지'를 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선 임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북돋우고, 서로 소통하며 장기 미래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인적쇄신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사진=홍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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