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안 보다간 큰 낭패 봅니다

머니투데이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 2023.07.12 10:06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향수’ 같은 추상어, ‘집단주의’ 같은 개념어는 알고 써야

편집자주 |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인간은 이동하는 동물이다. (중략) 문득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만 같은 갈망, 생전 가보지도 못한 ‘저 산 너머’에 관한 간절한 향수를 느끼는 존재가 인간이다. 나그네 인류다.

‘위 글에서 내용에 알맞지 않게 쓰인 단어를 찾으시오.’ 위 인용문은 이런 질문에 딸린 수능 언어영역의 지문이 아니다. 전문가가 쓰고 편집자의 손을 거쳐 책으로 발행된 글의 한 대목이다.

단어 ‘향수’가 반대되는 자리에 들어갔다. ‘향수’는 ‘타향에 있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그로 인해 생긴 시름’을 가리킨다. 인용문의 ‘생전 가보지도 못한’ ‘저 산 너머’는 향수가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다.

‘동경’은 ‘흔히 겪어보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우러르는 마음으로 그리워하여 간절히 생각함’이라고 풀이된다. ‘동경’이 이 자리에 딱 들어맞는 낱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향수’보다는 적절하다는 데 독자 대다수는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단어를 정확하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시로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이는 글을 쓸 때 기본적이고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습관이다.

우리가 구사하는 단어는 여러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맨 아래 층에는 구체어가 있다. 쉽게 말해 손으로 가리킬 대상에 대응하는 낱말이 구체어다. 자연물인 산과 강, 바다가 이에 속하고, 인공물인 의자와 스마트폰, 침대도 구체어에 속한다.

아마도 구체어는 언어가 발달해온 과정에서 초기에 만들어졌으리라. 구체어에 이어 점차 추상어가 개발되었다. 추상어는 관념적이어서 대상을 손으로 가리키지 못하는 단어다. 사랑, 평등, 정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앞의 ‘향수’도 추상어다. 추상어보다 나중에 형성된 더 상위 층의 단어가 개념어다. 이는 대개 이론을 세우기 위한 범주로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봉건제도, 집단주의, 진화 등이 개념어에 해당한다. 한편 이런 구분은 단어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추상어일수록 알맞은지 점검해야
구체어 활용에 실수하는 성인은 드물다. 그러나 추상어 이후로 넘어가면 빈도가 잦아진다. 일반인뿐 아니라 전문가의 글에서도 틀리게 들어간 추상어가 보인다. 원고를 정확하게 바루는 편집자의 검토와 수정을 통과한 글에서도 그런 사례가 눈에 띈다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인용문의 출처를 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글의 목적이 단어가 대충 구사되는 현상을 드러내는 데 있지, 완성도가 낮은 글을 쓴 필자와 매체가 지목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인용문은 모두 전문가 필자에 의해 작성되었고, 전부 편집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만 밝힌다. 다음 글은 마침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내용을 전개한다. 사전에 정리된, 즉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용례로부터 많이 벗어났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개가 어떤 날 어떤 사람을 물었다’라는 평서문에서 끝나는 게 처리이고, ‘그는 도대체 왜 개를 물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문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해석이다. 요컨대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우선 사전을 찾아보자.
사건 1.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사고 2.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사고는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을 해치는 일을 가리킨다. 사전 설명의 ‘나쁜’이라는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 안전사고, 가스사고, 충돌사고, 붕괴사고, 탈선사고, 의료사고 등 용례를 통해 사고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다. 방송사고 같은 예외는 있다.

사건은 대개 ‘관계’ 속에서 빚어진다. 형사 사건, 민사 사건이 떠오른다. 더 들어가면, 폭행 사건, 절도 사건, 주취 사건, 사기 사건 등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 ‘사망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된다. 역사적인 일에는 ‘사건’이 붙는다. ‘운요호 사건’, ‘보스턴 차 사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인용문 중 사례 분류는 틀리지 않았다. 개가 사람을 물면 사고라고 하고, 사람이 개를 물면 사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문장은 자유로운 연상의 서술이다.

글에 추상어나 개념어를 쓸 때에는 그 용어에 담긴 ‘구체’나 ‘현상’을 떠올려봐야 한다. 구체나 현상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해당 추상어나 개념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확인해야 한다.

집단주의는 무엇이고 개인주의는 무얼까. 전자는 개인의 이익이나 목표보다는 집단의 이익이나 목표를 우선시하는 관점이라고 정의된다. 후자는 집단주의와 반대로 사회의 모든 제도에 있어서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정의에 비추어 다음 글을 읽어보자.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는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 입신양명이 최고의 효도이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 가치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남들과 다르게 비치는 것, 튀는 것에 대한 공포. 이 집단주의 문화로 인한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심리학계의 실증적 연구 결과 문화에 따른 국가별 행복도는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 북유럽, 서유럽, 북미의 행복도가 높은 데 비하여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행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낮게 나타나는데, 그 원인을 개인주의적 문화와 집단주의적 문화의 차이로 분석한다. 그는 공교롭게도 이 두 문화권을 비교하는 ‘비정상회담’에 출연하여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게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되었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사회 구성원 행복의 기반이 되었다는 설명은 이해된다. 그에 비해 한국의 집단주의가 개인을 속박하고 불편하게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인용문에서 문제 삼은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는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는 집단주의가 아니다. 이는 글에서 정리한 것처럼 ‘획일적인 서열주의’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인용문은 집단주의가 발현된 사례를 부적절하게 들었다.

사전 멀리하면 구체어도 틀린다
사전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구체어에서도 실수를 하게 된다. 이제 다음 인용문을 편집자의 눈으로 읽어보자. 어느 낱말이 어떻게 잘못 설명되었는지 찾아보자.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세르의 는 기식을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본다. 그래서 책 제목도 기생충(寄生蟲)이 아니라 기식자(寄食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대개 “기생충 같다”라고 표현하지만 기생은 생산성(환경 파괴)을 최고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기생’은 오해와 낙인이 많은 단어다. 과거 기생은 여성의 직업이었다. 그들은 놀고먹지 않았다. 기예를 갖추고 일하는 이들이었다. ‘기생충’은 여기에 ‘벌레 충’까지 붙었다. 벌레가 생태계에 기여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인간이야말로 벌레보다 못하다. 맘충, 설명충처럼 한국사회에서 혐오의 접미사가 된 벌레는 억울하다.

기생에 해당하는 영어 ‘parasite’는 ‘para’와 ‘site’의 합성어이다. ‘para’는 “옆에, 나란히, 같이” 등의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기생은 타인과 같이 산다는 뜻이다. 숙주와 기식자는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같이 사는 사이다. 삶의 주최자는 손님이 필요하다. 숙주도 다른 숙주에게는 기생하는 존재이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미셸 세르는 최고의 기식자를 왕(王)으로 보았다.

필자는 ‘기생충’을 ‘기생’이라는 직업에 ‘충’이 붙은 단어라고 설명한다. 많은 독자를 당황하게 한 설명이다. 일부 독자는 일종의 수사적인 기법이 아닐까 하는 반응도 보였다. 굳이 설명이 필요한지 의문이지만, ‘기생’은 妓生이고, ‘기생충’은 寄生蟲이다. 앞의 ‘기생’과 뒤의 ‘기생’은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이 글의 표현을 활용하면, ‘기생’이라는 단어를 오해한 사람은 바로 필자다.

임경석 교수는 책 〈역사 논문 작성법〉에서 “스스로 의미를 설명할 수 없는 단어는 문장 속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의미가 불분명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전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어의 의미를 똑똑히 확인한 이후에 구사하는 문장이 정확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나는 이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 “단어의 의미를 막연하게 떠올린 뒤 구사하는 문장은 정확하기 어렵다”고. 눈치 챈 독자들이 있겠다. 나는 사전에서 찾은 낱말 설명을 기초로 이 글을 지어 올렸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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