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인구 위기와 아시아적 가치

머니투데이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2023.07.11 02:03
장보형 연구위원
한때 일본을 필두로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이끈 원동력으로 '아시아적 가치'가 집중조명받았다.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을 견인했다고 평가되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대신해 동아시아판 근면성실의 대명사로서 전통적 유교문화에 기반한 '유교자본주의'라는 테마가 각광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러한 아시아적, 유교적 가치는 부패와 불투명성으로 얼룩진 '정실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격하되면서 경제발전사의 무대에서 사실상 퇴장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시아적 가치가 또다시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무대가 인구위기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OECD 최저로 떨어진 가운데 장기간 인구 고령화에 시달린 일본은 물론 이제 인구감소가 시작된 중국, 또 우리와 유사한 인구압력에 허덕이는 대만 등 동아시아 주요국들이 공통적으로 인구위기에 직면하면서 그 배경으로 역시 유교문화에 의존한 보수적인 가족 형태, 만연한 성차별, 입신양명과 학력주의의 폐단 등이 주목받는 것이다.

특히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의 또다른 얼굴이 한층 위태로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사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인구감소 등은 이미 20세기 후반 서구 선진국에서도 경험한 일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인구 전환이 대체로 소득증가 등에 기반한 '개인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반면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불안을 배경으로 한다. 막대한 교육비나 주거비 부담은 물론 장시간 근로나 비가변적 기업문화, 비혼이나 독신, 동성의 비전통적 가족에 대한 불신 등 다양한 제도적, 문화적 경직성이 저출산의 덫을 초래한 것이다.


이처럼 인구절벽에 직면해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앞으로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크지만 정작 역내 인구정책들은 주로 이른바 '정상가족'의 출산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치중하면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 정부는 2006~2021년 16년간 저출산 대응에 무려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출생아 수는 20년 전의 절반인 25만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유엔은 한국, 대만, 중국, 일본 4개국 인구가 2020~2075년 중 28%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응해 골드만삭스는 이들 4개국의 세계 GDP 비중이 동기간 26.7%에서 17.4%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도성장기를 넘어선 국가에 안정적 내수 기반이나 균형적 경제포트폴리오 완비라는 측면에서 인구관리는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인구전환은 과연 위기일 뿐일까.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원제약이 커진 상황에서 인구감소를 "위기가 아니라 축복, 기회"라고 평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인구위기에 허덕인 일본은 아직도 세계 3위 경제국이다. 또 기술혁신으로 일자리 축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구감소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저 아시아적 가치를 탓하기보다 노동력 저변의 확대나 생산성 제고 등 인구전환의 새로운 역동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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