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임지연의 클래스 다른 ‘먹방’이 남긴 후유증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07.10 10:20

하정우 윤계상에 버금가는 레전드 먹방 장면 탄생

사진=KT스튜디오지니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극본 지아니, 연출 정지현·허석원)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첫 방송 때는 전국 시청률이 1.2%(닐슨코리아 집계)였는데 지난 4일 방송된 6화는 2.5%로 2배 이상 치솟았다. 5화에서 폭력 남편 김윤범(최재림)을 죽인 진범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내 추상은(임지연)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크게 증폭됐다. 연이어 가출 미성년자 이수민(윤가이)을 죽게 한 것도 박재호 원장(김성오)과 문주란(김태희)의 아들 승재(차성제)로 밝혀지면서 스릴러다운 박진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처음엔 ‘떡밥’을 잔뜩 뿌려놓느라 극의 흐름이 좀 더디고 답답했지만, 5∼6화에서 미스터리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김진영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의 힘이자 김태희 임지연 김성오 최재림 차성제 등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 덕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추상은을 연기한 임지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지연은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완벽하게 변신했다.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더 글로리’ 속 박연진의 잔상이 채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그는 천연덕스럽게 또 한 번 두고두고 회자될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매 맞고 사는 여자 추상은은 박연진과는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끔찍한 학교 폭력을 자행하며 죄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박연진이 폭력적인 가해자를 상징한다면, 남편의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임신부 추상은은 최대의 피해자를 대변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에서 가난하고 무기력한 피해자로의 감쪽같은 변신. 이것 하나만으로도 임지연의 도전은 박수받을 만해 보인다.


사진=KT스튜디오지니


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임지연을 더욱 다시 보게 하는 것은 일상적인 장면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그만의 연기 ‘디테일’ 때문이다. 팽팽한 긴장이 넘치는 이 드라마에는 의외로 블랙 코미디 같은 ‘먹방’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2화의 36분부터 2분 30초가량 펼쳐지는 추상은의 짜장면 ‘먹방’이다.


경찰서에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추상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슬프다는 것인지, 속이 시원하다는 것인지 속을 알 수 없다. 그리고는 경찰서를 빠져나와 돌연 중국집에서 게걸스럽게 짜장면을 먹는다. 그릇의 크기로 봐서는 곱빼기가 분명하다. 탕수육과 군만두까지 세트로 놓여 있다. 입이 미어터지도록 짜장면을 흡입한 추상은은 동시에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든다. 뭔가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압박에서 해방돼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식당 아줌마가 "천천히 먹으라"고 하는 말은 귓등에도 들리지 않는다. 임신한 배를 보고 "몇 개월?"이라고 물어도 그냥 내 일이 아니라는 듯 "5개월이요"하고 내뱉은 후 짜장면을 빨아들인다. 그 와중에 시동생에게 걸려오는 전화. 휴대폰에는 ‘남의 식구’라고 저장돼 있다. 사정도 모르는 시동생은 다짜고짜 형이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며 이런 식이면 형제의 "인연을 끊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추상은은 면발을 입에 가득 머금은 채 "이미 끊겼어요. 형이 죽었어요"라며 "제가 밥 먹는 중이라 다시 전화할게요"하고는 다시 짜장면에 몰두한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이 대목에서 추상은의 캐릭터와 심리의 변화, 가족과 주변 상황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이 ‘짜장면 먹방’을 보고 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너무나 태연한 임지연의 연기에 감탄하게 되고, 동시에 짜장면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 ‘먹방’은 필자만 감명받은 것은 아닌 듯하다. 네티즌들은 이미 추상은의 ‘짜장면 먹방’을 두고 ‘남편사망정식’이라며 ‘추앙’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드 검색창에도 임지연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짜장면이 뜬다. 박연진은 가고, 이미 추상은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인상 깊은 ‘먹방’은 하나 더 있다. 3화의 아파트 옥상신에서 추상은이 빨간 사과 한 알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무차별적 폭력의 피해자였던 추상은이 가해자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은밀히 암시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사과를 크게 배어 무는데 그 뒤로 추상은과 남편에게 큰일이 벌어진 그날이 오버랩된다. 추상은은 턱을 한껏 벌려 사과를 씹어먹는다. 그러나 씹는다기보다는 부숴버리는 느낌에 가깝다. 짜장면이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급박하게 몰려온 허기를 달래는 수단이었다면, 사과는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다. 마치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탐하듯 자신에 대한 각오이고, 남편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다. 눈물까지 ‘또르륵’ 흘리는 모습에서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KT스튜디오지니


그간 ‘먹방’은 주로 코미디의 소재로 쓰여왔다. 유명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방’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유튜브에는 수천, 수만 가지의 ‘먹방’ 콘텐츠가 흘러넘친다. 대부분 패러디와 유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스릴러의 ‘먹방’은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반전의 복선을 담는다. 2010년 개봉 영화 ‘황해’(감독 나홍진) 속에서 하정우의 ‘김 먹방’은 절박함 속에서 생존에의 의지를 보여줬고, 최고의 범죄 액션 시리즈로 나아가고 있는 ‘범죄도시’ 1편(2017) 속 윤계상의 ‘마라롱샤 먹방’은 잔인하고 거친 빌런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임지연의 ‘짜장 먹방’은 가히 하정우와 윤계상 이후 단연 최고라 할 만하다.


반면 김태희에게는 이런 강렬한 ‘먹방’ 같은 눈에 띄는 임팩트를 줄 장면이 없어 아쉽다.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대부분 클로즈업된 얼굴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 그래서 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임지연과 함께 최고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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