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K라면 50개=월급…韓프리미엄 즐기는 인니, 열쇠는 '할랄'

머니투데이 자카르타(인도네시아)=조규희 기자 | 2023.07.11 05:40

[창간 기획]ALT 차이나 시대 3 - 소비재 시장 가치

편집자주 |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 산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퍼스트 무버를 뒤쫒아 기술적 진보를 토대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패권 경쟁과 전쟁으로 국제 무역의 흐름이 바뀌었다. 제 1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기술 경쟁국이 됐고 각국은 경제·자원·에너지를 안보 차원에서 접근한다. 세계 경제 지형이 요동치는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자원, 인력, 소득, 기술력 등 구체적 기준에 따라 개척 가능한 신시장을 조망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현실적인 수출 위기 돌파구를 모색한다.

주민등록증에 개인이 믿는 종교가 적혀 있는 나라. 저렴한 데이터 비용과 70%가 넘는 휴대전화 보급률을 토대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나라. 2억8000만명의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소득 수준보다 과하게 한국산 제품을 향해 '지갑'을 여는 시장이다. 반면 고정 관념과 선입견, 이슬람과 '할랄'에 대한 불편한 인식 등으로 매 큰 '친(親)한국 시장'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적잖다.

인니 현지에서 한국 제품을 유통하고 떡볶이·김치 등을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무궁화유통을 지난달 12일 찾았다. 5000여개 현지 마트와 거래하는 김종헌 대표는 "아직 늦지 않았으나 더 늦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김 대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할랄 인증이 중요하지 않았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성분도 쉽게 판매됐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종교적 행동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매장에서 할랄, 비할랄 제품의 매대 구분을 해야 하며 현지인도 눈치가 보여 비할랄 제품 매대로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되다'라는 의미로 이슬람율법에 따라 허가된 음식, 장소, 행동 등 모든 것을 아우른다. 통상 알코올 성분과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뜻한다.

인니 정부는 2014년 자국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제품에 할랄 인증을 의무화하는 '할랄보장법'을 제정하고 2019년부터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다만 타국과의 협의 지연 등으로 2019년 10월부터 5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내년 10월부터 식음료를 대상으로 할랄 인증이 의무화된다. 공산품과 의료기기는 2026년 10월, 미처방 의약품은 2029년 10월, 처방의약품은 2034년 10월부터다.


6월 14일 방문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한 마트에서는 비할랄 음식을 'PORK'(돼지) 매대에 따로 분리해 판매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무궁화유통은 현지에서 소규모 떡볶이와 김치 공장을 만들어 어렵지 않게 할랄 인증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할랄 인증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무슬림 근로자 △기도실 △돼지고기 관련 시설 유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 대표는 한국산 제품 가격이 현지 제품에 비해 여전히 비싼 축에 속하지만 'K-열풍'과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면서 주요 고객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한국산 식품을 구매하는 주요 고객이 인니의 중산층 이상이었는데 중·하층도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구매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며 "한국산 라면 1개가 월급의 2% 정도인데도 점차 이런 소비 성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K 프리미엄'은 뷰티 분야에서도 통한다. 자카르타 외곽 지역에 위치한 코스맥스 공장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화장품을 생산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인니인만 400명이 넘는다. 인니 뷰티 시장은 매년 9.1%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최소 12조원의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아직 화장품은 할랄 인증 의무 대상인 아닌데 코스맥스는 선제적으로 절차를 밟아 인증을 받았다. 정민경 자카르타 지사 법인장은 "할랄이 더이상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보면 KS마크, Q마크로 기본적 품질을 보증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며 "할랄 인증이 없으면 기본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제품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주요 타깃층은 도시에 거주하며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20~40대다. 소득 수준이 낮더라도 기꺼이 외모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젊은 고객들이다.

정 법인장은 "남성용 제품 TV 광고를 보면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정체된 길을 가면서 땀을 흘리는데, 화면 전환이 되면서 세안제를 사용해 깨긋하고 시원하게 얼굴을 닦는다"며 "오토바이 사용률이 높고, 매연이 심각하다는 걸 인니인도 인지하고 있는데 이를 타깃으로 하는 남성 화장품 시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 중 76.4%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플랫폼 시장 선점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애플리케이션(앱) 시장 진출도 고려해볼만하다.

매년 평균 480만명 정도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인니에서 산모을 위한 임신·육아 앱을 개발한 전현준 대표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회색지대(합법도 불법도 아닌 영역)가 많이 존재해 여러 도전과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영위하면서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방법을 도출하고 접목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법리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전 대표는 "법인 설립과 등기, 세금 납부 등에 대해서는 현지 법무법인에 연간 계약으로 일임하는데 한국인 변호사가 있는 법무법인도 존재한다"며 "사업 초장기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현지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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