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차·철강 덮친 '탈탄소 파고' 어떻게 넘을까

머니투데이 허민호 (사)넥스트 수석연구위원 | 2023.07.03 03:00
허민호 (사)넥스트 수석연구위원
'전기차는 깨끗하다' 이 말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전기차엔 구멍 뚫린 그릴도, 배기구도 없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으니 온실가스도, 미세먼지도 뿜지 않는다. 전기마저 재생에너지로 얻는다면 전기차를 충전하고 달리는 동안 배출하는 탄소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원료·부품 구매, 생산, 폐기에 이르는 '자동차의 일생'을 따져보면, 전기차도 적잖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자동차는 국내 철강 수요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자동차 생산시 나오는 탄소의 30~40%는 철강 사용 때문이다. 자동차용 철강은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한다. 전기로로 고철을 재활용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자동차용 철강을 만들 수 없다.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쇳물을 만드는 고로-전로를 통해서만 고급강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때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전기차 이야기를 하면서 전주기 탄소발자국까지 언급하는 건 단지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윈회는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를 현재 운행 기준에서 자동차의 일생을 평가하는 LCA(Life Cycle Assessment)로 전환할 방침이다. 올해 안에 LCA 방법론을 개발해 유럽의회에 보고하고, 2025년 이후 이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차도 팔고 철강도 팔아야 하는 우리로선 여간 곤혹스런 상황이 아니다. 이미 유럽 자동차회사와 철강회사 간에는 탈탄소 철강 개발 및 공급 계약, 관련 프로젝트 지분투자 등 사업제휴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26년 LCA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아직 기준을 밝히고 있지 않다. 경쟁사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철강회사에 야심찬 탈탄소 철강 사용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자동차시장에선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내연기관차 생산원가 중 철강 비중은 8% 미만에 불과하며, 전기차는 이 보다 훨씬 낮다. 탈탄소 철강은 비쌀 수밖에 없지만 총 생산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오히려 친환경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선점해 기존 차보다 비싸게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동차회사가 탈탄소 철강 수요를 견인한다면 자동차·철강회사 모두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미래 성장 시장을 먼저 손에 넣는 윈윈전략을 펼 수 있다.

탈탄소 철강을 만들려면 궁극적으로 수소환원제철이 도입돼야 하지만 국내에선 2030년 중반은 돼야 상용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자동차 LCA는 이르면 2025년 시작되는 만큼 수소환원제철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기존 설비를 이용해 저탄소 철강 생산을 서둘러야 한다. 국내 철강회사는 고로-전로와 전기로를 통합 운영해 탄소 배출을 30~48% 줄이면서도 고품질 철강을 생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탄소감축률은 공급망 배출량(Scope 3)을 뺀 직·간접 배출량(Scope 1·2)만 반영한 것이다. LCA 기준이 되는 Scope 3까지 포함하면 감축률은 이보다 낮아진다. 석탄 사용은 더 줄이고, 천연가스와 수소로 만든 직접환원철은 더 많이 써서 배출량을 더 줄여야 한다. 직접환원철을 수입할 수 있는 공급망 확보도 중요한 문제다. 탄소 감축은 속도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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