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최태원 회장이 주재한 SK그룹 확대경영회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 사업 수익성과 자금흐름 등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확대경영회의는 SK그룹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행사다.
최 회장은 그룹이 처한 어려움을 지적하면서도 친환경 미래 사업을 향한 강한 지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불확실성에 대하는 자세를 논했는데, 방향성은 '탄소 제로' 로 정해져 있었다"며 "신사업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정유·화학 사업을 담당하는 SK이노베이션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미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글로벌 포럼'에서 "2025년 '그린 자산' 비중 70%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 자산'은 이차전지, 청정 에너지, 재활용 플라스틱 등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거나 탄소중립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의미한다.
SK이노베이션은 김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 "당초 목표를 1년 앞당긴 2024년에 '그린 자산' 비중을 7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린 자산'은 2020년 33%에서 현재 61%까지 늘어났다. 약 1년 안에 이 수치를 9%포인트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탄소중립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김 부회장의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날 1조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키로 했다. 이 돈은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자로), 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 개발, 연구개발(R&D) 역량 확보에 쓴다. SK온이 최근 △투자유치·차입·회사채 등을 통해 8조원을 확보하고 △미국 에너지부(DOE)를 통해 최대 92억 달러(약 11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정책지원자금을 잠정 유치한 직후의 발표였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배터리 인프라 투자자금 문제를 해결한 가운데 또 다른 신사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팔을 걷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업으로의 전환은 업계 전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에서 중동과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가 이어지며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업이라면 과감히 정리하고 신사업을 추진한다. LG화학이 범용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 분야 투자재원 마련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가 안 보이는 게 가장 불안하다"며 "막대한 돈이 들겠지만 카본 사업에서 그린 사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으면 자칫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 탄소 등 다양한 환경규제 강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정유 및 석유화학은 조만간 좌초자산이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며 "가장 먼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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