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큰 목적은…" 개인 시간 쪼개 성과낸 공무원, 열일의 이유

머니투데이 김도균 기자, 양윤우 기자 | 2023.06.26 08:00

[창간기획]관존민비의 종말(下)

편집자주 | 한때 공직 생활을 하는 것이 큰 영예였다. 공무원은 벼슬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공무원 하겠다는 학생들이 없다. 현직자들도 민간 이직을 꿈꾼다. 최근까지 여전히 살아있던 '관존민비'라는 전근대 가치관이 이제야 붕괴되는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공공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마주한 현시대를 기록한다.



"적극행정은 가욋일"…도전 어려운 조직, 젊은 인재 수용 어렵다




지난해 11월말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 제9차 총회. (우)이경석 충남도청 사무관 (좌)김귀배 MOWCAP(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의장./사진=이경석 사무관 제공
자신의 개인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이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큰 성과까지 낸다. 이들을 움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적극행정 유공 포상 수여식에서 훈장 등을 받은 공무원 3명에게 물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직된 공직 문화 속에서 도전적인 일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적극행정을 가욋일로 치부하는 공무원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적인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공직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최근, 젊고 유능한 인재를 공직 사회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낸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합리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태안 원유 유출 사고 극복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시킨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경석 충남도청 사무관(48)은 낮에는 본래 업무를 하고 퇴근시간 이후에야 세계기록유산 등재 관련 업무를 해야 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등재 신청부터 등재까지 약 9개월동안 동료들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안 될 거란 자조적인 얘기 속에서 도전하고 성과를 내니 성취감이 남달랐다"며 "태안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을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을 준비하는 사람들, 현직 공직자들이 공무원 조직은 돈을 벌어 성과를 내는 사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적극행정 우수 사례를 포상하는 것처럼 일 잘하는 공무원을 칭찬하고 자존감을 세워주면 사명감으로 일할 사람들도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금전적 보상과 함께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왼쪽부터)조해진 울산광역시청 특별기동징수팀장(52·사무관). 이경석 충남도청 사무관(48). 김성대 경기 과천시청 교통과 교통개선팀 주무관(46)./사진=각자 제공
'녹조 근정훈장'을 수상한 조해진 울산광역시청 특별기동징수팀장(52·사무관)은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로 탈세한 민간 기업에서 지방세를 받아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4년 경유를 수입·판매하면서 수입 유류에 부과하는 주행세 100억원을 탈세한 모 증권사와 9년간의 재판 끝에 일궈낸 성과다.

조 사무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담당업무가 아니었기에 주간에는 본연의 업무를 해야 했다"며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검찰청을 오가며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과정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히 힘들었다"며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고 밝혔다.

조 사무관은 또 "금전적인 보상은 사기업 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존재하고 공무원이 금전적 보상을 목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며 "일을 잘 하는 사람한테는 상을 주고 독려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로 우회전 차량에 횡단보도 보행자를 경고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김성대 경기 과천시청 교통과 교통개선팀 주무관(46)은 예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성과를 낸 경우다.

김 주무관의 '우회전 차량 보행자 경고시스템'은 지난해 12월 과천시가 특허 등록을 마쳤다. 김 주무관의 개발품이 나오기 전까지 우회전 도로에서는 보행자에게만 주의 경고를 했다. 차량에 보행자가 있음을 경고하는 장치는 김 주무관이 최초로 개발해냈다.

김 주무관은 "비예산으로 추진됐고 시범 사업이 결정될 때까지 혼자 업무를 해야하는 여건이었다"며 "우회전 사망사고를 줄여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추진했던 일에서 성과를 내고 그 성과로 인해 보상을 받아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조직이었으면 한다"며 "젊은 구직자들에게 공무원 조직도 자기계발을 이룰 수 있는 조직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경기 과천시에 설치된 '우회전 차량 보행자 경고시스템'. 김성대 경기 과천시청 교통과 교통개선팀 주무관(46)은 예산 없이 이 시스템을 개발해냈다./사진=김성대 주무관 제공




"신의 직장? 편의점 알바보다 못해"…공무원 탈출 열풍, 해법은




지난 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시험관리관으로부터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1
공직 탈출 열풍이 거세다. 특히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공직 기피 현상이 심화한다. 공직사회 전반에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

2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 원서를 접수한 결과 5326명 선발에 총 12만1526명이 지원해 2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1992년 19.2대 1을 기록한 이래 31년 만에 역대 최저치다.


현직 공무원들 중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한국행정연구원(KIPA)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2022년 공직생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기회가 있다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공무원의 비율은 45.2%로 2021년(33.5%) 대비 11.7%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2030세대 공무원들의 이직 의향이 높았다. 20∼30대로 대졸 이상이며 재직기간 5년 이하인 하위직(6∼9급) 공무원 100명 중 65명(65.3%)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21년인 100명 중 42명(42%) 대비 23.3% 포인트 증가했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옥재은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4월 서울시로부터 받은 '최근 10년간 MZ세대 의원면직률'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에서 사직서를 낸 공무원은 561명이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81명이 5년차 이하 공무원이었다.

■ "편의점 알바보다 못 번다"는 공무원들…"보수체계 손 봐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 3월 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무원노조 출범 21주년 기념 및 2023년 대정부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친일외교 규탄과 함께 ‘온전한 노동3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공무원 인기가 떨어지는 요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낮은 임금 수준이 핵심이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30세대 이직을 희망하는 공무원들의 1순위(74.1%) 이유는 '낮은 보수'였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최근 3년간 계속 하락 추세다. 2020년 90.5%에서 2021년 87.6%, 2022년 83.1%로 조사됐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민간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공무원 보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산출한 비율이다. 비교 대상 민간임금은 상용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의 사무관리직 보수다.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관계자는 "공직사회의 복리후생제도를 보다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연 공급제(호봉제) 중심의 보수체계를 성과와 생산성 중심으로 개편해 공직 업무 수행의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며 "인사시스템을 성과 바탕의 투명하고 정확한 평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공직자들이 경력을 쌓고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승진 기회 부족해 의욕 상실, 인사 체계 개선돼야"

공무원연금공단 /사진=머니투데이DB
승진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도 공무원 인기 하락 요인 중 하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제 부처의 경우 승진 인사 격차가 굉장히 심하다"며 "10년~15년 동안 사무관(5급)을 하고 있다. 서기관(4급)으로 승진해야 하는데 사무관 생활이 너무 길어지면서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겨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5급 사무관이 된다. 일반 기업으로 비유하면 신입·대리 직무를 10년~15년간 하는 셈이다.

박 교수는 또 "과장이 되면 국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정치 바람을 굉장히 많이 탄다"며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 공무원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으로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의욕이 상실되는 것"이라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승진 또는 인사 관리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직위 구조를 재조정해 체계적인 승진 경로와 진급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전문성과 역량 향상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직업 훈련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젊은이들이 보람을 느끼고 도전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직무를 재조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공적 봉사 동기 가진 인재 뽑을 수 있도록 채용 방식 바꿔야"

(고양=뉴스1) 유승관 기자 = 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장 앞을 응시생들이 지나고 있다. 2023.6.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재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 서비스에 열정을 가진 공공봉사동기(PSM·public service motivation)를 가진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채용 방식을 기존 객관식 시험 등에서 유연한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부를 객관성 시험으로 뽑더라도 절반 정도는 1주일 동안 심층 면접으로 뽑는 방법도 있다"며 "실제 영국의 경우 3~4일 동안 면접과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공무원을 채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면접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수험생들에게 특정 질문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집단 토론을 시켜도 수험생들은 논쟁이 붙으면 서로 떨어질까 봐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인재를 뽑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9급 공무원 수험생들이 일회용 평가를 위해 6개월~1년 학원에 다니면서 (시험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기간 개인의 성숙과 능력 개발은 안 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도 낭비"라며 "공적인 의미는 엄중하고 이를 위해 봉사할 사람들도 있다. 공적 서비스의 동기가 넘친 사람들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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