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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제분업계 간담회에서 출고가 인하 요청할 듯…제조사들은 난색━
농식품부는 당초 제분협회 회원사가 아닌 SPC삼립과 삼양제분(삼양식품 계열사)도 간담회 참석을 요청했다가 뒤늦게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를 주재하는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밀 등 원자재값을 담당하는데 이들 두 업체가 참석할 경우 라면, 빵 등 가공식품 전반에 대한 가격인하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이날 간담회에선 밀 국제가격 동향과 전망, 제분업계 현안 및 건의사항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업계에선 그동안 농식품부가 밀 수급 동향 등 현안을 주로 제분협회와 논의한 만큼, 각 제분사를 모두 소집한 것은 이례적이란 의견이 많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제분사에 밀가루 공급가격 인하를 요청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지난해 4월부터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한 점을 고려해 2~4분기 밀가루 가격안정 지원 사업으로 545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며 "이로 인해 밀가격 폭등 분의 약 70~80%를 상쇄해 업계의 부담을 덜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밀 수입가격이 하락한 만큼 국민 부담 완화를 위해 업계에 (가격인하)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분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업계도 그동안 손실을 감내하며 가격 안정에 동참했기 때문에 추가 인하 요구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 한 제분사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 이후 밀가루 출고가를 올린 적이 없다. 이 기간 밀 가격 인상률을 고려하면 정부 지원을 고려해도 업계가 인상 폭의 20~30%는 감내한 것"이라며 "B2B(기업 간 거래) 거래는 계약 조건에 따라 공급 가격이 다르고, 현재 공장에선 지난해 하반기 수급한 밀로 제품을 생산 중이기 때문에 최근 밀 선물가격 하락분이 제조 원가에 반영되려면 최소 수 개월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추 부총리 발언 이후 국제 밀 시세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엘니뇨 현상으로 밀 주요 재배지역인 미국, 캐나다에서 극심한 건조 기후가 예상돼 밀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지난주부터 국제 밀 시세가 강보합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가 올해 하반기 밀가루 출고가를 약 5% 인하할 것이란 의향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업체는 상반기에 출고가를 소폭 인하했고, 향후 가격 동향을 봐서 인하할 계획이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간담회 전부터 구체적인 인하율이 공개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자체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중소형 제분사가 이날 간담회 불참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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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원가 60% 이상은 수프가 차지…밀가룻값 낮춰도 원가 영향 적어━
그러나 라면 제조사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한 라면 제조사 공장장은 "라면 1봉지 생산 원가에서 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미만이고 수프 원가가 더 높다"며 "밀가룻값을 내린다고 라면 원가를 소비자가 체감할 정도로 낮추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라면 제조사 관계자는 "라면 1개 출고가는 약 600원인데 여기서 0.6% 낮춰도 3~4원 수준"이라며 "팜유와 소금, 포장재 등 부원재료값도 올랐고 인건비와 물류비도 대폭 증가해서 출고가를 낮추면 손실이 우려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라면 가격이 전년 대비 16~23% 인상됐지만, 농심 등 주요 제조사의 영업이익률은 3%대로 오히려 전년 대비 하락했다.
올해 1분기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 빅3 업체의 영업이익은 대체로 개선됐지만, 이는 국내 출고가 인상보다 해외 사업 호조의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라면 3사의 1분기 실적만을 고려해 밀가루를 사용하는 식품 제조사 전반의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시장 흐름과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국내 식품사 영업이익률은 대체로 2~3%대에 그친다"며 "지난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면 대부분 적자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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