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 반도체 인재 1000명에 연봉 3억씩 주자"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3.06.24 09:00

[선임기자가 판다]월가의 '저승사자'가 쏜 아폴론의 화살...일본과 손잡은 미국 반도체 왜?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2018년 6월 3일 (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류허 중국 중앙위 정치국 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가 미중 3차무역협상의 1차회담을 마치고 대화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2017년 2월 트럼프 행정부의 첫 상무장관이 된 '월가의 저승사자' 윌버 로스(Wilbur Louis Ross Jr.)는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미국 무역적자를 야기한 국가 리스트를 들여다봤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독일·캐나다·대만 등의 리스트를 들여다보던 그는 철강 분야에서 대미 무역적자를 야기한 국가에 대한 조치를 이미 머리 속에 떠올렸다. 월가에서 철강 구조조정의 전문가였던 로스 장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철강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2018년 3월 캐나다·독일·일본과 함께 대한민국의 기업들에 대해 25%의 보복관세 조치를 내렸다.

무역적자의 다른 축이었던 반도체에 대해선 접근법이 달랐다. 금융전문가로 일생을 보낸 그는 반도체에 대해선 익숙치 않았다. 그가 10살 때인 1947년 미국 AT&T 벨랩에서 발명된 반도체는 그가 70세였던 2007년 스마트폰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반도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졌던 그는 미국과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 CEO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도체에 대해서 공부 좀 합시다"라는 게 그의 요구였다.

상무장관이 된 2017년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곡차곡 반도체에 대해 공부했다. 첨단 전문지식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했을 지 몰라도 기업구조조정의 전문가로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가 있었다. 누군가의 강점과 치명적 약점을 찾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처음에는 반도체 용어에서 조차 어색해하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예리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 나갔다.

몇달에 걸쳐 반도체를 공부한 로스 장관은 반도체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생각했던 한국이나 대만 기업에 대한 공세 전략을 펴는 대신 더 큰 적인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할 수 있는 '아폴론의 화살'을 찾아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보호무역주의의 선봉이었던 그는 취임 이듬해 '아폴론의 화살'의 시위를 당겼다. 중국과의 무역갈등 속에서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네덜란드를 찾아간 게 그 신호였다.



ASML 첨단 장비공급 중단, 반도체 굴기...중국몽이 꺾이는 순간


(헤이그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19년 6월 3일(현지시간) 헤이그에서 열린 CEO 라운드 테이블에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참석해 얘기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폼페이오 장관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에게 ASML이 생산하는 '아폴론의 화살'인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ASML이 미국 기업들로부터 받는 노광장비 핵심기술에 대한 협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해 7월 마르크 뤼터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당시 찰스 쿠퍼맨 안보 보좌관은 뤼터 총리에게 중국이 ASML 기술을 보유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미국과 우방국의 위험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를 제공했다고 2019년 1월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업계의 정통한 소식통은 "이 문서에는 윌버 로스 장관이 한국과 대만,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에서 공부한 것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첨단반도체 생산의 핵심장비인 ASML의 노광장비의 금수조치 이후 중국의 '반도체 굴기(山+屈 起: 우뚝 일어섬)'는 급제동이 걸렸다.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선언하고 제국을 꿈꿨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꿈)'이 처음 꺾이는 순간이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선언한 이듬해인 2014년 '반도체산업발전추진요강'을, 2015년엔 '중국제조2025'를 발표하고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첨단 기술 국가로의 도약을 꿈꾼 것이다. 반도체 자급률 목표를 2020년 40%, 2025년까지 70%로 설정해 2030년까지 중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 선진 수준으로 도약시킬 꿈을 키웠다.

2016년에는 56억달러(약 6조 2500억원)을 들여 푸젠성 진장시에 D램 업체 푸젠진화반도체를, 같은해 240억달러를 들여 우한시에 국유기업 칭화유니 산하에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YMTC)를 각각 설립했다. 모두 중국 정부 주도 하에 건설된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이다.

이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중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장비의 공급을 막으면서 미-중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



규소시대 전세계 패권잡기 나선 미·일 반도체 동맹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세계의 패권은 그 시대의 무기를 누가 쥐느냐에 있다. 인류는 석기로 초기 지구의 지배력을 확보했으며, 청동기가 석기를 물리쳤고, 철기는 청동기를 눌렀다. 철기시대 이후 세상은 반도체로 움직인다.

철기 시대를 거쳐 규소(Si: 반도체의 원재료) 시대에는 첨단 반도체를 쥐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게 전세계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 2월 23일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조지타운대학에서 가진 '반도체지원법(CHIPS)과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위한 장기비전' 발표에서 반도체의 안보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의 위축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극초음속 무기, 드론, 인공위성과 같은 많은 방어능력은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칩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국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는 미국 안보와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덧붙였다.

이어 "내 아버지는 프로비덴스(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주도)에 있는 브로바 시계공장에서 일했고 28년만에 회사가 값싼 노동력을 쫓아 중국으로 옮기면서 그의 모든 친구들과 함께 조기 퇴직을 강요 당했다. 이는 지난 40년동안 수백만명의 미국인에게 일어난 일이다"며 중국 중심의 전세계 제조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모든 미국인에게 미칠 장기적 위험을 피하는 방법으로 반도체를 꼽았다. 반도체는 기술경쟁에서 '그라운드 제로(시작점 또는 폭발점)'이며 미국의 새로운 투자전략의 중심이라고 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021년 7월 2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브래디 룸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미국 정부는 강력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가반도체기술센터(National Semiconductor Technology Center: NSTC)를 설립키로 했다. 110억 달러가 투자될 NSTC는 양자컴퓨팅, 재료과학, AI 등을 포함해 모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협의체다.

레이몬도 장관은 "21세기 세계경제를 형성하기 위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리는 혼자 갈 수 없다"며 2차 대전 당시 적국이었다가 전후엔 최우방국이 된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지난달 26일 레이몬도 미 상무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이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만나 내놓은 공동성명서에는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 그 외 경쟁자들에 맞선 반도체 협력의 초안이 담겨 있다.

'일본-미국 상업 및 산업파트너십'(JUCIP: Japan-U.S. Commercial and Industrial Partnership) 2차 회의의 핵심내용은 양국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협력하고, 사이버보안과 개인정보보호, 생명공학과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JUCIP 내에서 협력키로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탄력적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미국 NSTC와 일본 첨단반도체기술센터(LSTC: Leading-Edge Semiconductor Technology Center)간의 협력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키로 했다. 1990년대 두차례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일본 반도체를 침몰시켰던 미국이 이번에는 일본과 손잡고 중국 공략에 나선 것이다. 그 여파가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에도 미칠 수밖에 없는 미·일 동맹이다.


미·일·중 각축 속 대한민국의 숙제...국가반도체기술혁신센터, 인재육성 절실


[파리=뉴시스] 전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1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 팔레 데 스포 로베로 샤팡티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리셉션에서 최 회장의 목발을 들고 대화하고 있다. 2023.06.21.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밀월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과 부품 소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 제조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합쳤다는 것은 분명 우리 기업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위기의 신호다. 또 미국의 압력으로 반도체굴기 과정에서 걸림돌을 만난 중국도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나서고 있어 위협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협력을 하더라도 쉽게 우리의 제조경쟁력을 따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 중국이 첨단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면서 한국이나 대만을 추격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관점에서 맞는 얘기지만 10년이나 20년 후에도 이런 상황이 유지될지는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하는 업계 최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나 미·일 반도체 동맹 등은 사실 우리 나라나 기업의 컨트롤 범위 밖의 일이다"며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에 고민하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기술선도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전략수립과 미래전략을 실행할 우수인재의 발굴, 육성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소장은 "미국의 NTSC나 일본의 LSTC 등과 같은 국가차원의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소 등을 총망라해 10년~20년 후 장기적인 비전을 찾고 실현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현재 대부분의 반도체 연구들이 자금력이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기업차원에서 이뤄지고 있고, 단기적인 과제에 집중해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 발표회 및 반도체 미래기술 민관협의체 출범식'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3.5.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회장 등이 대승적 차원에서 미래 기술개발에서는 협력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육성에 나서는데 우리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배타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산 장비업체나 부품소재 업체들도 줄세우기를 할 게 아니라 두 기업이 공동으로 경쟁력 있는 장비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더 시급한 것은 인재육성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레이몬도 장관은 "반도체 제조인력에 투자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며 "제조에 열광하는 엔지니어와 과학자 세대를 교육하고 영감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케네디가 인간을 달에 보내는 임무를 발표한 후 10년 동안 미국 내 물리학 박사의 수는 3배, 공학박사의 수는 4배가 됐다"며, "같은 방식으로 10년 동안 공학을 포함한 반도체 분야 졸업생 수를 세배로 늘리도록 대학에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단순히 반도체학과를 설립해 장학금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사회에서 존경과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임형규 KAIST동문학술장학재단 이사장은 "엔지니어들이 사회적으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핵심인력 1000여명은 연봉을 2억~3억원씩 받을 수 있도록 해 우수인력들이 반도체 쪽으로 몰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이사장은 현재 우수인재들이 안정적 생활을 위해 모두 의대로 가는 현실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말로만 열정을 요구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장과 SK텔레콤 부회장을 지냈고 삼성 사내 지원 장학생 1호였던 그는 우수 인재가 없으면 아무리 반도체 경쟁력을 갖추려고 해도 사상누각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우려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태국 보트 침몰 순간 "내리세요" 외친 한국인 알고보니…
  2. 2 "아이고 아버지! 이쑤시개 쓰면 안돼요"…치과의사의 경고
  3. 3 경매나온 홍록기 아파트, 낙찰돼도 '0원' 남아…매매가 19억
  4. 4 민희진 "뉴진스, 7년 후 아티스트 되거나 시집 가거나…"
  5. 5 '수상한 안산 주점' 급습하니 PC 14대…우즈벡 여성 주인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