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의 의료 '노키즈 존'[우보세]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 2023.06.23 05:2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전문의가 없고 필수약도 없습니다. 전쟁터에 병사도, 실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20일 열린 대한아동병원협회의 소아청소년 필수약 품절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이랬다. 연초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에 이어 이젠 141개 소아청소년 필수의약품의 품절사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병원앞에 줄을 서는 '소아과 오픈런'과 해열제를 구하기 위한 '약국 뺑뺑이'는 이제 의료 소비자들에게도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 됐다. "병사도 실탄도 없다"는 의료 공급자들의 비명은 앞으로 '오픈런'과 '뺑뺑이'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적색 경보다.

최근 전해진 '폐과 선언'과 '약품 품절'이라는 강한 단어 탓에 의사도 약도 없는 상황이 갑자기 나타난는 듯 보이지만, 사실 맥락없이 불쑥 나온 게 아니다. 미래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될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매년 수직낙하해 올해 16.6%까지 떨어졌다. 필수약이 부족하다는 소식도 매년 심심찮게 전해졌다. 의사는 물론 약도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징조는 꽤 긴 기간 꾸준히 나왔다.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진료를 받을 어린이들이 줄어들 게 뻔한데 전공을 '소아과'로 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 약도 마찬가지다. 앞이 보이는데 무턱대고 약 개발과 생산을 공격적으로 할 제약사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를 위해 소아과 전문의의 길을 택하고 약을 만들어내라고 강제할 순 없다. 불투명한 미래 탓에 아이를 갖기 힘든 부부에게 '우리를 위해' 출산을 하라고 무턱대고 강권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상식이고 현실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출산율과 함께 결국 의사도 약도 없는 상황이 왔고, 이는 아이를 갖기 힘든 또 다른 이유가 돼가고 있다.


큰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출산 문제 자체에는 재정적 재원이 있었다. 하지만 저출산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의사와 약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뚜렷한 당근책은 없었다. 의료계 얘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의료 공급을 제한할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지돼온 듯 보인다. 소아청소년과는 만성적 저수가에 시달린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전망이 안좋은데, 낮은 수가 탓에 다른 과보다 수입도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제약사들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묶여있다. 많이 생산할 수록 약가가 깎일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약을 더 생산할 이유가 없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지난 11일 개최한 학술대회의 명칭은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다. 다른 진료 과목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저출산 시대에 어린이를 돌볼 의사와 먹일 약까지 없는 절망적 상황이 눈 앞이지만 정책은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노키즈존'에 머물러 있는게 아닌가 한다. 건강보험 재정 역시 저출산 고령화 탓에 빨간불이 들어와 저수가와 약가 연동제 해소가 쉽진 않겠지만, 이제 더 늦출순 없어보인다. 재정 효율화를 통한 당근책이 뭔지 고민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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