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골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박찬욱 감독, 올 타임 '레전드'인 이유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 2023.06.21 17:14
박찬욱 감독 /사진=넷플릭스


세계가 인정하는 연출자이자 스토리텔러 박찬욱 감독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레전드'일 수밖에 없는 비결을 엿보게 했다.


박찬욱 감독은 21일 오후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도스와 '미래의 영화인'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박찬욱 감독은 "미국 HBO 시리즈 '동조자' 촬영을 최근 마쳤고 편집 작업 중이다. 지금 넷플릭스 일정을 위해 편집을 땡땡이 치고 나왔는데 HBO가 들으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웃음). 영화 '전, 란'의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는데 이걸 넷플릭스와 함께했다. 또 이경미 감독님 신작의 프로듀싱을 맡고 각본을 같이 쓰고 있다. 세 작품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라는 근황을 알렸다.


넷플릭스와 첫 협업 소감은 어떨까. 박찬욱 감독은 "'전, 란'은 오랫동안 써온 각본이다. 본격적으로 집필해서 완성한 건 2019년이다. 원래 극장 개봉용이었다. 무협 액션물이라 어느 정도 제작비 규모가 따라줬으면 싶었는데 넷플릭스와 협의가 잘 돼서 함께하게 됐다. 좋은 지원을 약속해 줬고 간섭도 별로 없다"라고 만족스러워했다.


테드 서랜도스 CEO는 "레전드와 다름없는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고 정말 기쁘다. 세계가, 그리고 내가 한국 영화와 사랑에 빠진 건 수년째가 되었다. 넷플릭스의 첫 영화도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였다. 한국 영화의 수준은 대단하고 따라올 자가 없다. '전, 란'은 한국과 밀접한 주제로 거장의 손에서 탄생됐다. 예산은 문제 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좋은 스토리텔러가 원하는 스토리를 최대한 실현하는 게 저희 넷플릭스의 모델이고 잘 이어져왔다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극을 좋아했고 최근작인 '헤어질 결심'도 여러 번 봤다. 다층적인 부분이 좋아서 앞으로도 여러 번 볼 것 같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은 무척 영광이고 특혜라 생각한다"라고 화답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왼쪽)과 박찬욱 감독(오른쪽), 사진=넷플릭스


OTT업계 공룡, 글로벌 1위인 넷플릭스 CEO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그는 "타인과 감정적인 연결을 해주거나, 현실 세계의 탈출구가 되어주는 것. 이 둘 중 하나를 충족해주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롭고 진실될수록 좋은 영화이고. 제가 2004년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을 처음 봤을 때가 한국 영화에 진입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 정말 많이 보게 되었다. 좋은 영화란 이렇게 긴 여정의 진입로가 되어준다고 본다. 20년 전 본 영화를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이런 게 좋은 영화다"라고 답했다.


반면 박찬욱 감독은 "매일 집-학교, 사람은 누구나 개인으로서 경험이 한정되어 있고 만나는 사람의 숫자도 뻔하다. 이런 좁은 범위를 넓혀주는 게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이국적 풍광을 보여줄 경우도 있고 전혀 모르던 직업 세계를 파고들기도 하고, 혹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관계를 지독하게 파고들어 인간 심리를 잘 묘사할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나와는 다른 사람과 세계, 이런 걸 실감 나게 보여주고 연결시키는 게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저는 넷플릭스 영화 중 '로마'를 제일 좋아한다. 멕시코시티 1970년대 가정부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걸 제가 언제 어디에서 보고 듣겠나.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감정을 느끼는 것, 그렇게 연결해주는 게 좋은 영화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드는 힘은 뭐냐면 감독의 비전, 통찰력이다. 감독이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 거기서 모든 게 비롯된다. 감독이라고 말하지만 작가, 연출자, 배우, 촬영감독 등 모두를 통칭한다. 하나의 비전을 위해서 대게는 감독이 수립하고 리드하는데, 그러나 절대 혼자 힘으로 되진 않는다. 크루와 캐스트들과 많은 교감을 해야 한다. 좋은 감독이란 팀원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영감을 받고, 팀원들을 자극하기도 하고 단일한 하나의 비전을 향해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좋은 감독', 이는 곧 본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언제나 제가 제일 재밌는 게 무엇인지 찾아왔다"라면서도 "이런 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묘사했을 때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를 고민할 땐 저는 늘 혼자서는 하진 않는다. 혼자 하는 고민은 외골수 판단에 빠지기 쉽기에 항상 주변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이거 말이 돼? 공감돼? 이해돼?' 항상 묻는다. 예를 들어 정서경 작가라든지, 가족이든, 누구든 닥치는 대로 물어본다.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적어도 100만 명 이상을 상대로 하는 상업 영화를 만든다면 100만 명 모두에게 물어볼 순 없지 않나. 결국 내가 생각해야 하고, 좁지만 주변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대화 과정에서 '안 통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엔 바꿔야 한다"라고 안주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명감독이지만, 그의 비범함은 다른 게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거절당하기 일쑤인 삶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박찬욱 감독은 '거절'과 관련 질문이 나오자 "거절을 당하는 건 쉽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고 당하는 거니까 내가 할 일이 없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럴 수밖에 없고. 우리 직업은 거절당하는 것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투자사에게 거절당하고 스타들에게 거절당하고 그런 일들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건 쉽다. 어떻게 소화하느냐, 그 감정을 처리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그건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한다, 저 배우가 날 우습게 본다' 이런 식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내 쪽의 이유든 그쪽의 개인적 사정일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까 그것으로 잊어버려야 한다. '이 배우에게 거절당했어' 감정적으로 갖고 있게 되면, 예를 들어 이병헌 싫어서 안 보내면 결국 나만 손해다. 항상 그걸 생각해야 한다. 나한테 이로운 게 뭔지. 내게 이익되는 감정 상태가 뭔지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는 조언을 건넸다.


이어 "거절당하는 것보다 거절을 할 때가 어려운 거다. 그건 쉽지 않지만 정답은 간단하다. 명쾌해야 한다는 거다. 얼버무리는 식으로 해서 상대방이 '내가 거절당한 거야? 여지가 있는 거야? 이렇게 받아들이게 만들면 안 된다. 상대방이 농락당했다는 기분이 안 들도록 명쾌하게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K-컬처' 신드롬을 이끈 선구자로서 인기 요인을 분석하기도. 박찬욱 감독은 "누가 봐도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의 영향을 쭉 받아왔을 텐데 한마디로 말해 너무 고생을 하지 않았나. 'K-콘텐츠' 인기에는 고생한 한국 사람들의 역사가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본다. 일제강점기부터 가깝게만 봐도 전쟁을 겪었고 독재 정권 하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며, 갑자기 산업화를 일궜다. 또 계급 갈등, 젠더 갈등 등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이 많나. 그런 걸 압축적으로 겪은, 바람 잘 날 없는 세상을 살아서 한국인들은 웬만한 자극엔 끄덕도 안 한다. 그런 나라에 살다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가 좀 자극적인 거 같다"라고 바라봤다.


그는 "웬만한 걸론 한국인들의 흥미를 못 당기니까 한 작품에서 감정의 진폭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폭이 크고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단일하게 웃기면 끝, 슬프면 끝이 아닌 우리 영화는 웃겼다가 슬펐다가 다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안 보니까, 마음을 온전히 담아냈다 생각을 안 하니까,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야 한다.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차분하고 냉정하고 온화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이런 영화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것보다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이 점이 한국 콘텐츠의 특징인데,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니까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때가 온 거라 본다"라고 짚었다.


끝으로 박찬욱 감독은 "저는 사실 필름스쿨 출신이 아니다.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현장에서 여러 실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누군가는 여러분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라"라고 사기를 북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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