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앞 살며 24시간 '응급 콜'…故 주석중 교수가 시간에 쫓기던 이유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3.06.20 17:59

흉부외과 현직 전문의 수, 피부과·성형외과 '절반'
은퇴 앞둔 전문의, 새로 배출될 인력보다 많아
의사 부족한데 심장·폐 수술 증가…고령화 영향
PA 없인 수술 못 해…'흉부외과 특별법' 제정 요구도

자전거와 헬멧, 굽 낮은 구두 한 켤레.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패밀리타운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고(故)주석중 교수의 마지막 흔적이다.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그에겐 '기동성'을 높여주는 아이템이었다. 1분, 1초에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실려 오면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도록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거처를 마련한 것도 '기동성' 때문이었다.

고인이 이토록 시간에 쫓기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장효준(44)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도 한양대병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차로 5분 거리에 산다. 한 달의 절반은 24시간 '응급 콜'(응급의학과에서 호출)을 대기하는데, 콜 당직일 땐 가족 약속마저 파투 내기 일쑤라고 한다. "흉부외과 전문의·전공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 현재의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시간에 쫓겨 살도록 만든다"는 게 장 교수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흉부외과 인력난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현직' 전문의 수는 흉부외과가 모두 합해 1038명으로, 인기 과인 피부과(2092명), 성형외과(1945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연간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20년 21명, 2021년 20명, 2022년 24명으로 1993년(57명)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년엔 새로 배출될 전문의(21명)보다 은퇴하는 전문의(32명)가 더 많아 흉부외과 의사 수는 '자연 감소'할 전망이다. 고령화로 폐암, 심장질환, 대동맥 박리 등 수술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수술할 의사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올해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의는 30명인데, 새롭게 배출되는 전문의는 32명에 불과하다. 특히 1993년 배출한 전문의들이 은퇴하게 되는 2025년 이후부터 의사 수 부족은 심각해질 전망이다. 2027년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의는 56명인데, 올해 들어온 전공의들이 한 명도 그만두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전문의 16명이 줄어든다. 2028년과 2029년에는 각각 53명, 59명이 은퇴할 것으로 예상돼 전공의를 올해 수준으로 확보해도 10명 이상이 매년 모자란다.



전문의는 타 진료과로 개원, 전공의는 전공 이탈 중


이런 상황에서 남아있는 흉부외과 의사들마저 흉부외과를 등지고 타 진료과로 갈아타려는 '전공 이탈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2일 더불어민주당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 발표한 결과, 2022년 흉부외과 전문의 304명이 자신의 전공과 다른 진료과로 개업했다. 2018년(279명)보다 9% 늘어난 것이다. 신현영 의원은 "병원에서 수술해야 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현장을 지키지 못하고 (의원급에서) 단순 진료를 하는 현상이 증가하는 건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훙부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前) 단계로, '흉부외과의 씨'로 불리는 '흉부외과 전공의' 사이에서도 진료과를 갈아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신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문과목별 전공의 이탈률 자료를 살펴본 결과, 흉부외과 전공의의 이탈률은 2018년 6.3%에서 2022년 24.1%로 4년 새 17.8%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한 해만 흉부외과 전공의 4명 중 1명(24.1%)이 전공의 수료를 포기한 셈이다. 올해는 흉부외과 전공의가 40명으로 살짝 늘었지만, 3명이 중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인기 과'인 피부과·성형외과 전공의 중에서 지난해 다른 전공으로 갈아탄 비율은 각각 0%, 2.8%에 그쳤다. 신 의원은 "필수의료 과목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전공의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중도 포기까지 늘어나며 인력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환자는 느는데 수술할 의사는 줄어들면서 의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에너지를 모두 쓴 '번 아웃'으로 인한 곡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는 1일 평균 12.7시간(주당 63.5시간)을 근무하고, 평균 5.1일의 휴식 없는 당직이 이어지고 있다.

이 학회가 지난 2019년 회원(흉부외과 전문의)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51.7%가 "번 아웃을 겪은 상태"라고 답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의사의 번 아웃은 치료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조사에서 번 아웃 됐다고 말한 사람의 48.6%는 "번 아웃으로 인해 환자에게 위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또 "향후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3.9%에 달했다.


흉부외과학회 "흉부외과 특별법 만들어야" 제안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지난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료 공백을 막을 수 있는 '흉부외과 특별법(가칭)'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학회에 따르면 이후 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식품의약품안전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진척 사항은 없는 상태다.

국내 대다수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전공의의 빈 자리는 'PA(진료보조인력)'라 불리는 간호사들이 암암리에 대체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은 흉부외과 교수(전문의) 정원이 5명인데 2명만 있다. 게다가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이 4~6명인데도 5년 전부터는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 5년 동안 전공의가 0명이다.

흉부외과 교수 A씨는 "흉부외과 수술에서 폐를 열고, 연 폐를 잡고 있고, 실을 쥐여주는 등 이런 업무를 전공의가 해야 하지만 아무도 없으니 PA가 없으면 수술 자체를 할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흉부외과의 수련병원 기준, 전공의 보유율은 53.1%이며, 1~4년 차 전공의가 모두 존재하는 수련병원은 전체의 7.4%인 5개 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전남대병원·부산대병원)에 불과하다.

1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주석중 서울아산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사진=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페이스북.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주석중 교수와의 마지막 카카오톡 대화 화면. /사진=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페이스북.
장효준 교수는 "수가를 개선하고 월급을 더 많이 올려준다 해도 워라밸을 지킬 수 없다는 점 때문에 MZ 세대 전공의들의 지원율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2009년 흉부외과 가산금 제도가 생기면서 내과 전문의가 월 800만원을 받을 때 흉부외과 전문의는 수술 건수에 따라 그보다 400만~800만원을 더 받을 정도로 월수입은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돈보다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MZ 세대에겐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하는 흉부외과가 기피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흉부외과 교수 B씨는 "얼마 전, 대학 후배가 흉부외과 전공의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지만 말렸다. 워라밸을 지키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라며 "만약 의대로 돌아가 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만 있다면 흉부외과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20일 뉴시스·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폐암, 심장 수술은 각각 33.8%, 70% 정도 늘었고 인구 고령화로 환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흉부외과 의사는 향후 10년 안에 37%, 15년 안에 60%가 은퇴해 모자라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적정 인원은 지금보다 한 해 15~20명 정도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석(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똑같은 질환에 대한 수술을 5시간 하는 것과 20시간 하는 것과 수술비가 같고, 장시간이 소요되는 수술을 할수록 수술장 점유 시간이 늘어나 병원도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서 "정부에서 정한 전공의 정원에 한해 수련금을 지급하고, 전공의와 손발을 맞추는 보조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네 남편이 나 사랑한대" 친구의 말…두 달 만에 끝난 '불같은' 사랑 [이혼챗봇]
  2. 2 '6만원→1만6천원' 주가 뚝…잘나가던 이 회사에 무슨 일이
  3. 3 바람만 100번 피운 남편…이혼 말고 졸혼하자더니 되레 아내 불륜녀 만든 사연
  4. 4 20대女, 하루 평균 50명 '이 병'으로 병원에…4050은 더 많다고?
  5. 5 밤중 무단횡단하다 오토바이와 충돌 "700만원 달라"... "억울하다"는 운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