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에는 동료를 비롯해 환자와 보호자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도착한 이택선·박흥수 부부는 전날 주 교수의 부고 소식을 접한 후 충남 아산에서 두 시간 반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을 찾았다. 20년 전 주 교수로부터 심장 혈관이 막히는 협심증으로 개복 수술받았던 이씨는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다"고 인터뷰 내내 울먹였다.
아내인 박씨는 "남편 수술을 마치고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에도 가족을 먼저 안심시켜주던 주 교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치료 후 10년 넘도록 약 타러 올 때마다 건강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독여주던 인자하고 따뜻하신 분"이라고 주 교수를 떠올렸다. 이씨는 "수십 년 동안 이렇게 건강히 지낸 것은 모두 주 교수님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애통해했다.
가족에게도 주 교수는 항상 웃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온화한 사람이었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 가족이 모일 때면 일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인화해 선물해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즐겼다고 한다. 주 교수의 조카는 "가족이 모이는 걸 좋아하셨는데 자주 참석하지 못하셨다. 피로를 이기지 못해 졸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도중에 바로 병원을 찾으신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환자를 정말 가족처럼 생각했던 분"이라고 주 교수를 떠올렸다.
가족들은 주 교수가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에서 가까운 거리로 꽤 오래전에 이사를 왔다고 전했다.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며 환자를 돌보는 그를 가족들이 안쓰러워서 할 때면 주 교수는 "힘들지만 보람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주 교수의 조카는 "아이처럼 순수하게, 굳은 사명감으로 환자를 돌보고 연구에 매진하셨던 분"이라며 "인사도 없이 가버리셔서 너무 애통하지만 온 국민이 함께 추모해주시고, 같이 슬퍼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며 영면에 든 주 교수를 기렸다.
의료계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 교수는 심장혈관흉부외과의 4개 분야(성인 심장, 소아 심장, 종양, 대동맥) 중 응급수술이 가장 많은 대동맥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지난 2020년에는 급성 대동맥 박리 수술 성공률을 97.8%로 끌어올렸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세계 유수 병원들이 모인 국제 급성대동맥박리학회가 "대동맥 박리 수술 성공률은 평균 80~85%"라고 발표한 내용과 비교해도 우수한 결과였다.
전상훈 아시아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장(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대동맥 치료 수준을 끌어올린 의사"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20년 이상 '대동맥' 한 분야에만 헌신하며 최고의 의술을 펼쳐 온 그를 잃은 것은 의료계에 큰 손실"이라며 가슴 아파했다.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교수)은 "환자를 최우선으로 걱정하고 사랑한 최고의 의사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너무 참담하다"며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고귀한 뜻과 열정을 좇아가겠다"고 애도했다.
주 교수의 발인은 오전 20일 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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