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새벽, SNS 메시지가 울렸다. 삶을 끝내려던 10대 학생의 말이었다. 정리는 이미 거의 다 했단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45)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어디 사세요?"
실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의 말이었다. 그러나 유 단장은 그리 묻지 않았다. 정보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이는 사는 지역을 말했다. 죽으려는 이유도 알려줬다.
자살하려는 10대들이 SNS에 남긴 흔적. 죽을 거라는 '암시'. 그걸 샅샅이 찾고, 정말 위급한 순간이라 판단될 때만 '112 신고'를 한다. 그리 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신고 건수는 수만 여건, 구조한 이가 수천 명이 넘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진정 죽으려는 아이들, 어른들을 살리기 위해 순수하게 하는 일이란다.
2021년엔 수많은 생(生)을 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유 단장과 만나 이야길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그는 자주 문자를 보냈다. 주로 밤이었고, '자살 암시' SNS 글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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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시도 중이거나, 1주일 이내 위험한 것만 신고━
형도 : 죽고 싶단 내용은 다 있는 것 같은데, 뭐가 위급한 건진 판단이 잘 안 되는데요. 어떻게 신고하시는 건가요.
규진 : 이걸 한 번 보시겠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이달에 올라온 글이었다. 거기엔 이리 쓰여 있었다. '제 삶이 힘들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요. 그만 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할 게 있을까요?'
규진 : 네, 자살을 결심하고 주변 정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뭐가 빠진 게 있는지요. 발견하자마자 신고했습니다.
형도 : 신고하시는 기준은 뭔가요.
규진 : 정말 긴급한 사안만 신고해요. 단순히 "죽고 싶다", "나 죽을래"라고 해서 대상자로 보지 않아요. △자살 예행 연습이나 계획하는 단서를 발견했을 때 △유서를 봤을 때 △자살 시도 중일 때 △혹은 1주일 이내 결행 가능성이 클 경우에 신고합니다. 청소년이 동반할 위험이 있을 때도요.
형도 : 생각보다 복잡한 거네요.
규진 : 그렇지요. 그래서 SNS는 모든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해야 해요. 청소년들은 충동적, 감정적으로 올리는 글도 꽤 많고요. 무작정 신고했다가는 정작 살릴 사람을 못 살리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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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마포대교'로 달려가, 직접 사람 살리기도 ━
규진 : 이야기하며 최대한 언니처럼,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요.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확보해두고요. 아이가 정말 자살하려는 시점이 되면, 그 때 경찰에 신고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이런 글을 올린 거다.
"나, 이제 내일이면 없어져."
그럼 유 단장이 말을 건다.
"내일 무슨 기념일이에요?"(유 단장)
"나 죽어요."(아이)
"죽어요? 방법은 생각해봤어요?"(유 단장)
형도 : 기억에 남는 분도 있으실 것 같아요.
규진 : 새벽 한 시쯤이었어요. 마포대교에서 죽는다는 정보가 들어왔지요. 느낌이 쎄한 거예요. 그런데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이름도 모르고, 성별도 모르고요. 집에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지요.
형도 : 아무 정보가 없는데…어떻게 하셨어요?
규진 : 택시타고 마포 대교로 갔죠.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차가 왔고요. 근데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봤어요. 한 남자가 죽을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저 사람인 것 같다"고 경찰에 말했지요.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맞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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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성매매 하자"는 문자 잘못 받고 '시작'…"자살 징후 알아채는 '셀프 감시' 교육 필요해"━
그 혼자 감당하긴 힘든 일이다.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와 대화하면서 정답이 뭘지, 어렴풋이 찾은듯 했다. 자살 암시처럼 보이는 글을 캡처해 유 단장에게 물었다.
형도 : 이런 글도 긴급한 걸까요. '자살 시도를 두 번 했다. 엄마가 못 나가게 한다.'
규진 : 못 나가게 한다는 건,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신고 대상이 아니지요. 그런데 만약에 '자살 시도를 두 번 했는데, 엄마는 알지도 못해' 이러면 신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도 : 결국엔 가까운 이들의 '관심'이 정말 중요한 거네요. 대표님 홀로 20년 넘게 수만 건을 신고했지만요.
규진 : 그래서 '셀프 감시'가 중요해요. 자살 고위험군 학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한다면요. 자살 징후는 이거고, 행동 패턴은 이렇고, 자살 직전 패턴은 이렇고, 실제 사례 위주로 보여주는 거지요. 그럼 내 자녀를 정말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잖아요. '어, 내 딸 저런 패턴 보였는데.' 그럼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요.
규진 : 한 명을 교육하면 여럿에게 전파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뿐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을 다 챙길 수 있어요.
형도 : 고맙습니다. 끝으로 여쭤보고 싶은 건…정말 힘든 일인데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 걸까요.
규진 : 놓치면 안타까우니까요. 한 명이라도요.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거잖아요. 죽으면 장례식 때 가족, 친구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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