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DNA 깨부수는 다윗의 돌멩이"…3천억 들인 중입자치료 가보니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3.06.13 16:55
연세의료원 중입자치료센터 지하 4층에 설치된 지름 20m 크기의 '중입자 가속기'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 속 노란 기기에서 탄소 이온을 만들어낸다. /사진=정심교 기자
지름 20m의 거대한 레일이 둥글게 원을 이룬다. 레일 곳곳엔 길이 1m가량의 파란 상자 모양 가속기들이 멈춰선 채 '윙' 소리를 내며 작동된다. '임무'를 마친 가속기는 레일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생긴 이곳은 세브란스병원이 3000억원을 들여 만든 '중입자치료센터'의 가속기실이다. 세브란스병원이 지난 4월 문을 연 중입차치료센터는 세계 16번째이자 국내에선 최초로 중입자를 활용해 암을 치료하는 곳이다. 연면적 약 1만㎡(2962평)에 지하 5층, 지상 7층 규모로 설립한 이곳은 건축 공사에만 2년 2개월, 장비 설치에만 1년 7개월이 소요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곳의 성공적인 개소를 기념해 지난 12일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중입자치료센터 개소식에서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은 "연세의료원은 1922년 4월 국내 최초로 방사선 치료를 도입한 지 101년 되는 해에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게 돼 영광"이라며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효과가 2~3배 높은 중입자 치료로 우리나라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자신했다.

현존 암 치료법 가운데 최신 의술인 중입자 치료는 의료계에서 '꿈의 암 치료'라고 평가받는다. 과연 중입자 치료의 원리·효과는 무엇일까.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 개소식에서 의료진이 참석자들에게 가속기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3.06.12.



전립샘암부터 적용… 향후 췌장암·폐암·간암 개선도 기대


중입자란 원자보다 작은 입자로, 현재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중입자는 '탄소 이온'이다. 가속기실 정중앙에 놓인 탄소 이온 발생장치에서 탄소 원자의 전자를 2개 떼면 양극의 성질을 가진 탄소 이온이 발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탄소 이온은 파란색의 중입자 가속기로 보내 빙글빙글 돌린다. 가속기는 자기장을 계속 바꾸면서 탄소 이온의 회전 속도를 끌어올린다. 이 속도가 빛이 지나가는 속도의 70%까지 빨라지면 빔 형식으로 추출해 치료실로 보낸다. 치료실에서는 방사성종양학과 전문의가 지시한 부위에 정확하게, 정확한 양의 탄소 이온을 조사해 암을 깨부순다.

노란색의 네모난 기기(탄소 이온 생성기)에서 만들어진 탄소 이온은 파란 상자(중입자 가속기)로 이동한 후 회전하며 속도가 빨라진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런 중입자 치료의 원리는 쉽게 말해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 빗댄다. 다윗은 물매라는 긴 줄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매달고, 물매를 큰 원형으로 돌리다가 속도가 가장 빨라진 순간 돌멩이를 그대로 골리앗에게 던진다. 가속돼 힘이 실린 돌멩이는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했고, 거구의 골리앗이 쓰러진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내과 금웅섭 교수는 "돌멩이가 중입자, 물매가 가속기, 골리앗의 이마가 암이라고 친다면 골리앗의 이마(암)는 돌멩이(중입자)에 맞은 순간 강력한 파괴력으로 깨질 것"이라며 "이것이 중입자 치료의 원리"라고 비유했다.

중입자 치료는 1회당 1분 30초~2분이 소요되며, 평균 12회를 한 세트로 치료받는다. 이는 기존의 방사선(X선) 치료, 양성자 치료보다 치료 효과가 2~3배 더 높고, 한 세트에 12회로 방사선 치료(평균 25회)보다 치료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환자가 도착 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해 20분이면 거뜬한 데다, 치료 과정은 무색·무취·무미로 통증 없이 누워있기만 하면 치료가 끝난다. 따라서 암 환자가 일상생활을 그대로 누리며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홍채선 교수는 "가속된 탄소가 암세포에 강력한 에너지를 전달하면 암세포의 DNA가 깨진다"며 "중입자 치료 효과는 기존의 X선 치료나 양성자 치료보다 효과가 2~3배 더 높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홍채선 교수가 중입차치료센터 고정치료실에서 중입자 치료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선 고정된 출구에서 나온 탄소가 빔 형태로 나오는데, 전립샘암 등 특정 부위의 암세포를 공격한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곳은 최근 60대 전립샘암 환자에 대한 중입자 치료(12회)를 완료했다. 홍채선 교수는 "전립샘암은 방사선을 쬔다고 해서 크기가 줄어들지는 않는 게 특징으로, 환자의 예후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연구에 따르면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중입자 치료를 받은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이 2배 이상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센터는 현재 '고정치료실'을 먼저 가동했다. 가속한 탄소 이온이 빔으로 나오는 출구가 고정돼 있어, 환자가 누운 채로도 치료받을 수 있는 전립샘암 환자가 이 치료실의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날 개소식에서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은 "올해 연말, 내년 초께 회전치료실(겐트리실)을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전치료실은 빔을 여러 방향에서 쏘아 암을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해당하는데, 360도로 움직이는 빔이 환자의 좌우 앞뒤에서 조사돼 암을 공격할 수 있다. 회전치료실이 가동되면 향후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폐암·간암까지도 치료할 수 있어 이들 환자의 생존율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홍채선 교수가 중입자치료센터 내 회전치료실을 보여주고 있다. 환자가 누우면 360도로 회전해 탄소를 조사할 수 있어 췌장암·간암·폐암 등 몸속 깊숙한 부위를 특정해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다. 이곳은 올해 연말, 내년 초께 가동을 시작한다./사진=정심교 기자


고가 치료비, 암과 붙은 장기 일부 손상 위험도 과제



이 치료법은 모든 암에 대해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초기 전립샘암의 경우 90% 이상은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 효과가 입증됐다. 또 기존 방사선 치료 후 암 주변 부위의 2차 암 발생률도 중입자 치료 시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 전이됐거나 진행한 암인 경우 다학제 진료를 통해 중입자 치료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

12일 오후, 서울 신촌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연세의료원 관계자 등이 테이프를 자르며 개소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이 12일 오후 열린 중입자치료센터 개소식에서 센터 개소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암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 치료법의 부작용도 있다. 암 주변에 있는 정상 장기에 대한 방사성 피폭이 거의 없도록 설계하지만, 그런데도 암에 바로 붙어 있는 정상 장기가 일부 공격받을 수 있다. 또 이미 방사선(X선) 치료받은 부위에 대해 중입자 치료를 추가로 시행하기는 힘들다. 고가의 치료비도 난제다. 현재 이 치료법은 평균 12회 실시해야 하는데, 모두 합한 치료비가 5000만원에 달한다. 현재는 비급여 항목이어서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성자 치료는 연세의료원을 필두로 서울대병원 부산기장암센터, 제주대병원도 중입자 치료기 도입을 준비하며 암 치료에 더 널리 적용될 예정이다. 그중 서울대병원은 당초 원자력의학원이 주도했지만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산시·기장군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추가 공간을 조성, 기계 도입 과정을 거쳐 오는 2027년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중입자가속기준비단 우홍균(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중입자는 목표로 삼은 암의 후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뿐더러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더 많은 양의 방사선을 조사할 수 있어 난치성 암 치료에 효과적"이라며 "기존에 암 치료에 잘 듣지 않던 암, 치료 기간을 줄여 치료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암 등 향후 난치성 암 치료에 중입자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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