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검사 않고도 암 찾아낸다…방사성의약품, 진단 패러다임 바꾸나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3.06.12 08:30

[탐방] 삼성서울병원 내 듀켐바이오 방사성의약품센터
제조 후 골든타임은 5~10시간…병원 내 자리 잡은 이유
암·치매·파킨슨병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공급 안정망 구축

방사성의약품을 주사하고 찍은 PET-CT 검사에서 전립샘암을 찾은 모습. 밝게 빛나는 부위가 전립샘암 병변이다. /사진=듀켐바이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이 남아있다. 암·치매·파킨슨병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약물로는 증상의 진행을 늦추고 완화할 수 있는데, 그 효과를 최대한 누리려면 '조기 진단'이 선행해야 한다. 최근 조기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의약품으로 '방사성의약품'이 주목받는다. 방사성의약품은 병으로 의심되는 부위의 조직을 떼지 않아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단 영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성동위원소(핵이 불안정해 붕괴하며 방사선을 내보내는 원소)와 의약품을 결합해 만든 특수의약품이다. '진단용(진단제)'과 '치료용(치료제)'으로 나뉜다.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은 투과율이 높고 파괴력이 약한 동위원소를 활용하며, 치료제는 투과율이 낮고 파괴력이 강한 동위원소를 결합한다. 그중 '진단' 목적의 방사성의약품은 병이 의심되는 조직을 직접 떼어낼 필요 없이도 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기존 암 진단 환자의 몸속 암세포를 추적 관찰할 수도 있어 암 조기 발견은 물론 암의 전이·재발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병 등도 마찬가지다.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은 파괴력이 강한 입자를 화합물에 결합한 것으로, 종양 표면에 붙어 세포를 저격한다. 이때 방출되는 방사선은 거의 이동하지 않아 정상세포를 공격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내 듀켐바이오 방사성의약품센터에 설치된 최신 버전의 싸이클로트론. /사진=듀켐바이오

윤광엽 듀켐바이오 품질보증부 차장이 삼성서울병원 내부의 방사성의약품센터에서 방사성동위원소와 의약품 원자재를 합성하는 방사성의약품 제조실(유리창 너머)을 안내하고 있다. 설명에 따르면 합성장치 한 개당 하나의 방사선의약품을 만들며, 각 장치는 납으로 차폐해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는다. /사진=정심교 기자
듀켐바이오는 국내 방사성의약품 시장점유율 1위(지난해 매출 기준)를 기록하며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국 12곳에 방사성의약품센터가 있고, 이 가운데 GMP(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을 받은 센터 6곳에서 방사성의약품을 제조한다. 이들 센터는 모두 다 '병원 내'에 있다. 왜일까. 이 회사 박준호 개발기획본부 차장은 "방사성의약품은 유효기간이 5~10시간에 불과하며, 일반 약보다 매우 짧다"며 "따라서 제조소(방사성의약품센터) 대부분은 완성품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서울 및 지방 대도시권 병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치매·파킨슨병 등을 진단하기 위해 방사성의약품을 투약할 환자가 생기면 이곳 센터에선 보통 당일 새벽에 생산해 공급한다. 듀켐바이오는 국내 방사성의약품 기업 가운데 최다 제조 품목을 보유했다. 주요 제품으로 암 진단용의 'FDG', 파킨슨병 진단용의 'FP-CIT',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용의 '비자밀', 재발·전이가 의심되는 전립샘암 진단용의 'FACBC' 등이 꼽힌다.

삼성서울병원 내 듀켐바이오 방사성의약품센터는 이 회사가 GMP 인증을 획득한 방사성의약품센터 가운데 한 곳이다. 박준호 듀켐바이오 개발기획본부 차장이 이곳에서 GMP 기준에 따라 관리하는 합성용 시약 카세트를 보여주고 있다. 개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1회용 시약이라고 한다./사진=정심교 기자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방사성의약품이 'FDG'다. FDG는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가운데 전신의 암 진단에 활용된다. FDG는 포도당과 구조가 같으면서 방사성 물질을 합친 방사성의약품으로, 암세포가 성장할 때 포도당을 흡수하면서 정상세포보다 대사·성장이 빠르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다. 이 회사 윤광엽 품질보증부 차장은 "암세포가 FDG를 포도당으로 인식해 흡수하면 FDG에 붙은 방사성 물질의 위치를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로 추적해 암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이 방식을 활용하면 암의 조기 진단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병을 진단할 때 필요한 정보는 병이 있느냐, 있으면 어디에, 얼마큼 있느냐다. 일반적으로 암이 의심될 땐 의심 부위에서 검체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방사성의약품을 활용하면 검체 채취가 필요 없다. 암 의심 환자에게 FDG를 주사한 후 PET-CT를 찍으면 CT는 환자의 몸 구조를 형상화하고, PET이 방사성 물질을 찾아낸다.


방사성의약품을 주사하고 PET-CT를 찍으면 질병에 따른 미세한 생화학적 변화를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전립샘암·파킨슨병·뇌종양·치매 등 다양한 질환을 조기에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박 차장은 "CT·MRI는 너무 작은 암까지는 미처 찾아내지 못할 수 있지만 PET-CT와 FDG를 활용하면 암이 작더라도 병변의 위치·크기를 조직검사 없이 쉽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분배기를 거쳐 바이알에 담긴 방사성의약품 완성품의 샘플. /사진=정심교 기자
삼성서울병원 내에 들어선 '듀켐바이오 방사성의약품센터'는 2017년 GMP 인증을 위한 공사에 착수해 2018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GMP 인증 받았다. 이곳에서 방사성의약품을 만드는 단계는 크게 세 공정을 거친다. 첫째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생성' 단계다. 이곳 센터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최첨단 장비인 '사이클로트론'을 갖췄다. 사이클로트론은 높은 에너지를 가해 입자를 표적 물질에 쪼여 핵반응을 일으키면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둘째는 방사성동위원소와 의약품의 합성 단계다. 사이클로트론에서 만들어낸 방사성동위원소는 이곳 센터 내 의약품과 결합하는 합성 장치를 이용해 의약품과 결합한다.

마지막으로, 분배기를 거쳐 각각의 바이알(약을 담는 작은 유리병)에 나눠 담긴다. 합성 장치 안에서는 한 번에 하나씩만 제품을 합성할 수 있다. 윤 차장은 "방사성의약품을 생산할 때의 모든 과정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차폐장치로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철저히 차단한다"며 "합성을 마친 최종 샘플은 품질관리(QC) 실험을 하고 샘플이 품목허가서의 요건에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면 비로소 조건부 출하한다"고 언급했다.

(사진 왼쪽부터) 윤광엽 품질보증부 차장, 박준호(왼쪽) 개발기획본부 차장은 삼성서울병원 내 위치한 듀켐바이오 방사성의약품센터에서 방사성의약품 제조 전 과정을 관리·감독한다. /사진=정심교 기자
듀켐바이오가 갖춘 방사성의약품 제조소 가운데 삼성서울병원 내 방사성의약품센터를 비롯해 전국 총 6곳이 GMP 인증을 획득했다. GMP 인증을 획득했다는 건 제조소에서 원료의 보관과 관리, 의약품의 생산, 공급까지의 전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게 관리된다는 의미다. 제조소 내 각 공간은 용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공조 시스템을 통해 부유 입자, 부유균 등을 통제한다. 방사성의약품을 다루는 만큼 관리 구역의 공기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도록 관리한다. 이러한 방사성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센터 한 곳을 구축하는 데는 80억 원 이상이 든다. 특히 GMP 시설은 3년마다 생산시설별로 적합 판정을 받는 인증 과정도 거쳐야 한다.

듀켐바이오는 2009년 강원대 방사성의약품 제조소를 인수한 것을 계기로, 전국 제조망에서 방사성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차장은 "전국 단위로 제조망을 갖추고 GMP 요건을 갖춰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아 방사성의약품 분야의 초기 진입 장벽은 높지만, 한편으로는 글로벌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망한 산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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