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검이라는 물레

머니투데이 윤지혜 기자 | 2023.06.12 06:00
북한 위성발사로 서울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31일 오전 7시12분 네이버 '트렌드 토픽'(왼쪽), 다음 '투데이 버블' 캡처한 모습. 토픽 더보기를 눌러도 북한 위성발사 관련 키워드는 등장하지 않았다. /사진=각 앱 캡처
"16세 생일날 해가 지기 전, 물레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죽게 될 것이다." 마녀 말레피센트가 오로라 공주에 저주를 내리자, 스테판 왕은 나라 안의 모든 물레를 불태웠다. 작은 가능성도 원천차단하겠다는 부정(父情)이었겠으나 모두 알다시피 공주는 물레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다. 저주를 막지도 못했지만, 지난 15년간 물레 없이 생활해야 했던 백성들의 불편도 컸을 테다.

네이버·카카오의 트렌드 추천 서비스를 '실시간 검색어(실검) 부활'이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정치권을 보면 "모든 물레를 불태우라"던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속 스테판 왕이 떠오른다. 이미 대중에 공개된 네이버 '트렌드 토픽', 카카오 '투데이 버블'을 보면 과거의 실검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인데도 정치권은 "여론조작에 활용될지 모른다"는 실체 없는 우려로 폐지를 종용해서다.

실검이 정치대결의 장으로 변질했던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이들 서비스를 '여론선동의 숙주'로 내모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학계에서도 "공적 역할을 하는 포털이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 위축된 서비스를 하는 건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논란에서 이용자는 완전히 배제됐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북한 위성발사로 서울에 위급재난문자가 발송됐을 때 실검을 찾는 이용자가 많았다. 국내에 벌어진 일을 알기 위해 해외사업자인 트위터를 찾는 웃지 못할 풍경도 반복됐다. 당시 네이버 뉴스 탭이 먹통이 되며 언론사 속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공통의 관심사를 실시간 보여주는 서비스가 국내 1,2위 포털에 부재한 것도 사실이다.


민간사업자가 이용자 수요에 응답하는 게 잘못일까. 다음은 지난 연말 시간별로 언론사가 많이 다룬 이슈를 소개하는 '언론사가 주목한 이슈'를 신설했다. 뉴스 기반이다 보니 투데이 버블에 제외된 정치 이슈도 포함된다. 다만 다음은 해당 서비스를 출시하며 별다른 공지나 홍보하지 않았는데, 자칫 정치권의 표적이 될까 염려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포털에 대한 정치권의 견제가 심화하는데 애꿎은 물레가 화형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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