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오늘날까지 울리는 조선 민초들의 물음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23.06.06 07:00
사진=전기수설낭
"내 비록 선왕께 충군의 벌을 받은 죄인이었지만, 당신처럼 선왕이 세상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소. 만백성들을 굽어살피셨던 선왕의 애민 정신만은 결단코 의심하지 않소! 오히려 당신들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은 돌보지 않고 성인군자 놀음이나 하면서, 권력과 재물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된 자들이 아니오? 노론이니, 벽파니, 시파니, 계속 이름을 바꾸어도 본질은 그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일 뿐이오." (390-391쪽)

'전기수 설낭'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되살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온 김동진 작가의 새 역사소설이다. 영화 '밀정'의 모티브로 유명한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과 임진왜란 초기의 명장인 황진 장군을 재조명한 소설 '임진무쌍 황진'에 이은 세번째 작품.

18세기 조선 사회는 유교의 틀에 갇힌 지배계층의 뜻에 맞추는 사회였지만 미세한 균열의 틈을 파고드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였다. 소설을 이끄는 인물인 이옥은 변화의 모습을 자신의 글에 입히려다가 귀정의 정책을 펴는 정조의 미움을 받아 변방으로 귀양 가 노역을 한다. 문제의 글은 소품체로 쓰였는데 당시 권력을 잡은 엘리트 문인의 눈에는 제멋대로인 가치 없는 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미한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이옥은 특별히 응시를 허락한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고 어떤 노인의 부탁을 받아 조준이라는 소년과 동행하게 되며 그 후 박선경과 김판석도 동행하게 된다. 네 사람은 같은 곳에서 묵으며 응시를 기다리며 한양의 문물에 감탄하지만, 뜻밖의 사고를 당한 선경과 생활비로 충당할 산삼을 도둑맞은 조준은 어쩔 수 없이 한양에서 다른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 소설은 젊은 유생 조준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세책상의 권유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로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흥미를 더한다. 자신의 쇠약함이 무슨 까닭인지 찾으려 하는 정조, 정조의 왕권 강화 정책을 못마땅해하는 신하들, 그리고 의관들이 엮어내는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한 축이며, 이유도 모르게 조준을 죽이려는 자를 피하고 친구가 연모하는 여인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축이다. 이 두 축이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추리 소설 형식의 '전기수 설낭'은 전개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인물들의 면면과 조선 후기의 사회상의 묘사 자체도 재미를 더한다. 당대의 연예인과 같았던 전기수나 전기수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세첵상, 새로운 기호식품을 팔아 부자가 된 연초상, 약재상 등의 직업이 등장하고 그 시대에는 천민으로만 생각했지만 어떤 집단보다 강한 조합을 갖던 도축업자, 전문직인 의녀, 목수, 화공 등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는 전개가 이 소설의 실존 인물 중 하나인 이옥의 실제 글처럼 다양한 색을 입은 채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한다.

◇ 전기수 설낭/김동진/싱긋/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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