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세는 단위는 루베(㎥)다. 정품 레미콘은 1루베에 운송비를 합쳐 10만원이 넘는다. 전단을 붙인 레미콘 상(商)은 "1루베당 6만원에 (판매) 해드린다"고 했다.
레미콘 상은 자신이 판매하는 레미콘이 '잔량'이라 했다. 공사장에서 남은 레미콘이란 말이었다. 레미콘 상은 "공사장에 레미콘 트럭 10대가 갔는데 1대 몫을 안 쓰면 그 몫이 우리에게 온다"고 했다.
레미콘은 공장에서 만들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굳기 시작한다. 공사장에 들렀다 오면 경화가 상당히 진행됐을 수 있다. 하지만 레미콘 상은 "제품에 하자는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레미콘 상 얘기를 듣고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했다.
공사장에서 레미콘은 자주 남는다. 건설사가 필요량을 잘못 계산했을 수도 있고 일부러 넉넉하게 주문했을 수도 있다. 건설사가 주문했으니 원칙적으로 잔량 처리도 건설사 몫이다. 보통은 건설사가 추가 비용을 내면 레미콘 회사가 잔량을 공장으로 다시 가져와 골재와 물은 걸러내 재활용하고 물과 한번 섞었던 시멘트는 건설폐기물(건폐)로 처리한다.
건설사가 잔량을 레미콘 회사에 통보했을 때 얘기다. 현실에서는 레미콘이 남았는지 건설사, 믹서트럭 차주(車主)만 아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레미콘 회사, 특히 지방의 중소형 회사는 건설사에 따로 비용을 받지 않고 잔량을 자동 회수해준다. 영업 경쟁 전략, 고객사 관리 차원이다. 이런 경우 건설사는 레미콘 회사에 잔량을 따로 통보할 필요가 없다. 레미콘이 남으면 믹서트럭 차주가 공장으로 도로 실어 오면 된다.
이 과정에 '브로커'가 개입한다. 믹서트럭 차주에게 잔량을 사 싼 값에 팔아넘긴다. 브로커가 지불한 금액은 고스란히 믹서트럭 차주 수익이다. 믹서트럭 운전자는 레미콘 회사 직원이 아니라 본인 소유 믹서트럭을 가진 '개인 사업자'인 경우가 많다. 전국에 등록된 믹서트럭 2만6000여대 중 회사 소유는 14%, 개인 사업자 자격 차주 소유는 86%다.
구로구에 전단을 붙인 레미콘 상은 판매 수익이 "믹서트럭 기사님들 '불로소득'"이라고까지 했다.
잔량을 브로커에 파는 믹서트럭 차주는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레미콘 상은 "하루에 많게는 믹서트럭 10대씩 들어온다"고 했다. 인터넷에 '레미콘' 검색하면 "잔량 싸게 쓰실 분", "수도권 모든 지역 당일 출하" 등 광고가 수두룩하다.
레미콘 재활용, 건설폐기물 처리도 비용 부담이 크다. 레미콘 회사가 믹서트럭 차주와 브로커의 거래를 알지만 눈감아 주는 때도 많다고 전해졌다.
레미콘 업계는 옥상, 마당 등 바닥에 까는 용도면 큰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하자는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건축에는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믹서트럭 뒤편에 '드럼'이 회전해도 레미콘 경화를 막지는 못한다. 드럼은 평균 분당 2회전 속도로 돌아간다. 레미콘 경화를 막는 게 드럼 회전의 목적이 아니다. 골재, 물, 시멘트 등 레미콘 재료가 층을 이루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레미콘을 만들고 2시간30분이 지나도 레미콘이 완전히 굳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화가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에 드럼에서 꺼내 타설하는 데 상당히 힘이 든다. 브로커들은 보통 물을 더 섞으며 작업을 한다. 레미콘의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3~4년 전 레미콘 잔량으로 지은 빌라에 하자가 생긴 적이 있다. 지난해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도 잔량은 아니지만 공사장 인부들이 레미콘 정품에 물을 더 부었던 게 주요 원인이었다.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등 레미콘 단체들은 "잔량을 쓰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표준기술원 관계자는 "1시간30분 이내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납품 기준에 어긋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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