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전세제도와 정부역할

머니투데이 김승욱 중앙대 명예교수 | 2023.05.25 02:03
김승욱 중앙대 교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제도 개편의 당위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의 전세제도 소멸론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전세제도 개편에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전세제도는 조선 중기부터 이미 존재했다. 곡물창고 등을 빌릴 때 전세제도를 활용했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관습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10년에도 가장 일반적인 주택임대차제도였다. 특히 자본이 부족하던 고도성장기에 주택보유자의 사금융 역할을 했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집주인에게 유리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적은 은행이자를 받아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전세로 임대하면 더 큰 집을 임차할 수 있고 저축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지속됐다. 그런데 최근 전세사기로 인해 상황이 변했다.

제도에는 공식적(formal) 제도와 비공식적(informal) 제도가 있다. 공식적 제도란 법이나 규칙과 같이 인위적으로 만든 제도를 말한다. 반면 도덕, 관습, 문화처럼 오랜 세월 필요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고 존속된 제도를 비공식적 제도로 분류한다.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비공식적 제도를 어떤 단편적인 이유로 인위적으로 급하게 바꾸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인간의 이성은 완벽하지 않아 어떤 부작용이 또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경제사학의 창시자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비공식적 제도는 100년에서 1000년 단위로 변한다고 했다. 따라서 비공식적 제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전세제도는 비공식적 제도에 속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존폐를 결정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최근 전세사기 등 문제가 발생한 것은 임대차3법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인해 임대차 시장에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아파트 전세공급이 갑자기 부족해지면서 빌라시장으로 그 수요가 몰려갔고 가격파악이 곤란한 빌라의 특성으로 인해 전세사기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전세사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기피해자를 돕고 전세사기를 막는데 역점을 둬야지 전세제도 자체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제도적 변화를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위험부담을 집주인이 진다는 면에서 전세제도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매매가 대비 전세가는 50~60% 수준이다. 거의 반값에 전세를 주는 이유는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기대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집주인이 손해고 반면 세입자는 이익을 보는 셈이다. 어느 정도 집값이 올라야 집주인이 이익일까. 시장금리가 5%인 경우 주택보유의 기회비용과 세금 및 수리비 등(기회비용의 20%로 가정)을 고려할 때 집값 상승률이 3.5% 이상 돼야 집주인이 이익이라고 예전에 국토연구원이 분석했다.

집값 변동폭이 큰 시대에 전세제도는 가격변동 위험을 집주인이 떠안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가격변동엔 빈곤층이 더 취약하다. 집주인이 세입자보다 부자라는 전제하에 전세제도는 집값하락의 위험을 부자가 떠안는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전세사기는 막아야 하지만 전세제도 존폐에 영향을 줄 정도의 제도변화에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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