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망각…' 은행의 몰락[광화문]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23.05.23 03:15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과 사상 초유의 유동성을 배경으로 불확실성 증폭의 금융위기가 누적되며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이 무너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쳐은행 같은 미국 은행은 파산을 겪으며 새로운 은행에 인수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5월 1일 JP모간은행에 팔렸다.

전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긴 뒤였다. 파산임박이 알려지며 예금대량인출(뱅크런)으로 실리콘밸리은행은 문제 발생 뒤 4 ~ 5시간 만에 400억 달러(약 48조원)을 지급했고 다음날 아침에는 24시간 내로 1000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해야 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은행 등의 결정적인 문제점이 노출됐다. 은행들은 대개 예금지급이 대거 몰릴때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재할인창구를 이용한다. 재할인 창구는 상업은행들이 각종 유가증권을 담보로 연준에서 긴급 자금을 빌리는 곳으로, 재할인 창구 대출은 주로 최후의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은행은 재할인창구 대출을 이용하지 않았다. 미국 은행 위기 후 연준과의 교류를 통해 위기 파악에 나선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파악한 이유는 더 놀랍다. 실리콘밸리은행 담당자들이 재할인창구 이용방법을 제대로 몰랐고 실무적 준비도 미흡했다는 것. 저금리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유치한 현금이 은행으로 쏟아져 들어올때는 이 돈으로 인출요구를 감당할수 있었지만 고금리에 더한 뱅크런같은 전혀 다른 상황 전개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리콘밸리은행 등 지방은행 파산사태의 직접 원인은 부실자산 증가에 따른 손실보다 급격한 예금인출사태에 따른 유동성위기에 따른 것인데 한마디로 고객들의 인출요청 러시로 내줄 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금융위기가 설마 또 오겠어'라는 느슨한 경계심도 영향을 줬다. 물론 연준의 저금리정책 시기에 유치된 예금이 서서히 머니마켓펀드(MMF)등 고금리 상품으로 이동한데 따른 실적악화 원인도 있다.

실무자만이 미숙했던 것은 아니다. 규모차이는 있지만 스위스가 CS문제를 해결하는데 36 ~ 48시간 밖에 걸리지 않은 것에 비해 미국이 실리콘밸리은행을 3주 뒤에나 매각한 것은 직무유기 수준이라는게 월가의 시각이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경유착 문제도 있다. 은행 파산 등 이번 금융불안은 해당 은행들이 소재 지역 선출직 권력의 비호하에 사업을 키우면서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았다는 것. 자산 규모 500억 달러 이상의 모든 금융기관이 주기적으로 은행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2010년 7월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 서명)은 금융권 큰손들의 로비에 의해 차츰 느슨해졌다. 실리콘밸리은행 회장을 포함한 로비스트들은 결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규제 완화를 관철해냈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금융기관의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가 아닌 2500억 달러로 상향 조정된 것이다. 공교롭게 2017년 약 510억 달러였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자산은 지난해 말 2090억 달러였지만 법 개정으로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에는 빠졌다.

외환위기로 은행이 무너지거나 팔린 경험이 여러차례 있는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면 현재 다양한 위기와 우려가 존재한다.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와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우려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에 기대는 신협이나 단위조합,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기관들의 행태도 여전하다.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하한선(의무비율)이 60%에서 50%로 낮춰진 것도 눈에 띈다. 위기가 터지지 않았을뿐 징후는 여전하다. 긴급조치의 존재조차 몰랐던 실리콘밸리은행 직원의 무신경은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배성민 경제에디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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