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혼자서 춥지 말아"…그리 가족이 됐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3.05.23 08:30

[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열한 번째, 포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태어난 강아지, 강추위 피하게 해주려 처음엔 '임시보호', 3주 고민한 끝에 가족으로 맞아…4년 뒤 태어난 아기 마꼬와 좋은 친구로, "포카는 내 생애 마지막 강아지이지요"

편집자주 |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동물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리 버려졌던 녀석들에게도 가장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산책하다 환하게 웃어 보이는 '포카'. 엄마는 유기견이었고, 태어난 곳은 보호소였다. 지금은 다르다. 이름을 매일 불러주고, 발 맞춰 걸어주는 가족이 있다./사진=포카 보호자님
검은 강아지가 꿈틀거렸다. 엄마 젖을 찾아 본능적으로 빨았다. 살려는 작은 몸부림. 시간이 흐르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보게 됐다. 이윽고 알아챈 건 다른 개들이 굉장히 많단 거였다. 모습이 비슷한 개, 다른 색깔의 개, 훨씬 큰 개, 활발히 다니는 개, 구석에서 움츠러든 개까지.

꼬물이는 겁이 많았다. 그걸 본 이가, 검은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포카혼타스처럼 용감한 여자 멈머(강아지)로 자라렴." 그걸 줄여서 '포카'라 불렀다.

유기견 보호소에 있다가, 겨울 추위를 피해 임시 보호 가정에 머물고 있던 작은 강아지 포카./사진=포카 보호자님
포카는 조금씩 자라났다. 귀는 덮히고 눈은 동그래졌다. 털이 보송보송해졌다. 천진난만했다. 젖을 찾아 엄마에게 향했다. 그러나 밥그릇 근처만 가면 엄마는 호되게 굴었다. 배를 곪아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다. 느긋히 끼니를 챙길 수 없는 환경이었으므로 예민했다. 그 신경질이, 때론 작은 강아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

별수 없이 엄마와는 일찌감치 분리돼야 했다. 실은 엄마는 버려진 개였다. 좋은 엄마 노릇을 하는 것도 그럴만한 환경이 돼야 했다. 거긴 그러지 못했다. 때가 될 때까지 나가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포카가 태어난 곳은 '유기견 보호소'였기 때문이다.



11월만 되어도 겨울처럼 추웠다


포카에겐 배에서 함께 나온 자매들도 있었다. 두 녀석들 역시 입양갔다./사진=포카 보호자님
포카와 함께 배에서 나온 두 꼬물이가 있었다. 두 자매들이었다. 하나는 포카와 같은 검은색, 또 다른 아이는 갈색이었다. 장난치고 놀 땐 셋이었으나, 이내 포카 혼자 남게 됐다. 자매들이 먼저 그곳을 나가서였다. 그건 좋은 거였다. '유기동물 공고 기한' 같은 숫자로부터 살아 남는 거였다.

보호소에 어느새 늦가을이 찾아왔다. 11월만 돼도 거긴 한겨울처럼 추웠다. 포카는 자주 바들바들 떨었다. 그걸 본 보호소 봉사자들은 안 되겠다 싶었다. 가족은 아직 못 찾았지만, 추운 겨울은 잘 버티게해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살아 있어야 봄을 맞고, 그래야 또 기회가 있을 거였다.
보호소에서 낳아준 엄마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작은 강아지 포카./사진=포카 보호자님
겨울나기를 위해 처음 보호소를 나왔다. 엄마와도 그리 떨어지게 되었다. 따뜻한 집으로 갔으나, 분리 불안이 심해 낑낑거렸다. 오래 머물기는 힘들게 됐다. 포카는 그리 임시 보호처를 떠돌다가, 결국 보호소 봉사자 집에 얹혀 지내게 됐다.



무릎 담요에 돌돌 싸여, 나리씨 집으로


포카는 웃을 때 이런 표정이 된다. 편안하고 행복해보인다./사진=포카 보호자님
그즈음 나리씨는 이탈리아 거릴 걷고 있었다. 남편과 신혼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눈에 들어온 건 거릴 자유로이 거니는 큰 개들이었다. '여기선 어디든 들어갈 수 있구나, 존중 받는구나' 그 생각에 기뻤다. 언젠간 나도 개를 식구로 맞아 저런 삶을 살고 싶다고, 맘을 먹게 됐단다.

그해 겨울은 나리씨에게 고된 계절이었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데, 결혼까지 함께 줄곧 달리느라 번아웃이 왔다. 프리랜서였기에 스스로 겨울 방학을 선언했다. 집에서 뭘 할까 고민하다 찾은 일이 임시 보호였다.
포카야, 스마일!/사진=포카 보호자님
겨울 추위를 피해야 했던 '포카'를 그때 알게 됐다. 파트너인 남편에게 녀석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데려와!"라고 너무 쉽게 말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이리 답했다. "마음이 그냥 움직였어. 패딩 입고 눈곱 끼고 눈이 한껏 처진 모습에."

포카가 나리씨 집에 오는 날이 됐다. 보호소 봉사자가 녀석을 무릎 담요에 돌돌 말았다. 그리고 나리씨 남편 품에 폭 안겨주었다. 나리씨 남편은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포카의 무게감과 온도, 촉감이 그랬단다.

"오빠, 그거 나 줄거지? 그거 내 것 맞지?" 눈으로 말하고 있는 포카./사진=포카 보호자님
본래는 겨울에만 돌보려 했다. 임보를 마치면, 예방 접종 후 북미로 입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새 나리씨와 포카는 정이 들었다. 그는 "포카가 새로운 데 가서 적응할 걸 생각하니 도무지 못 보내겠더라"라고 했다. 3주를 고민한 끝에, 나리씨는 포카를 가족으로 맞았다.



아기 갖고 걱정도 있었으나…"포카는 끝까지 내 식구"


"언니, 나도 빵 한 입만." 턱까지 괴는 애교 작전이면 넘어가지 않기 힘들게다./사진=포카 보호자님
포카가 온 뒤 나리씨 삶도 변했다. 이전엔 닥치는대로 일했었다. 정해둔 퇴근 시간도 없었다. 밤새 달리기도 했다. 이젠 오롯이 그를 의지하고 기대는 포카가 있었다. 그 덕분에 더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생활 리듬이 일 때문에 깨질라치면, 어김없이 포카의 분리 불안이 시작됐다. 2년 반에 걸쳐, 나리씨 루틴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포카도 안정이 됐다. "포카 덕분에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살자고 다짐했지요." 나리씨가 그리 회상했다.
매년 9월 22일은 포카의 생일. 태어남을 축하해줄 따뜻한 가족이 있다는 것./사진=포카 보호자님
나리씨 부부에게 또 다른 가족이 찾아왔다. 아기가 생긴 거였다. 태명은 '마꼬'였다. 주위에서 "큰 개와 아기를 같이 키워도 되느냐", "개털은 어떠하냐" 등 말들이 많았다. 부부는 생각했다. 포카는 끝까지 책임질 우리 식구라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똘망똘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포카./사진=포카 보호자님
그리 마꼬가 태어났다. 나리씨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그의 남편이 아기 가재 수건을 포카에게 들고 갔다. 아기 채취를 맡고, 강아지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연습한 거였다.



포카와 마꼬는 '좋은 친구'


창 밖을 나란히 서서 바라보는, 포카와 마꼬./사진=포카 보호자님
나리씨는 그런 얘길 들었었다. 아기들에게 처음 눈에 띄는 색상이 '검은색'이라고. 그래서 마꼬가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검은색 동물, 검은 개가 포카여서 기쁘고 다행이라 여겼단다. 마꼬는 말을 틔우던 아가 시절, 길에 보이는 모든 검은색을 보며 "포카색이야"라고 했다.
"공 주세요." 포카에게 부탁하는 마꼬./사진=포카 보호자님
배불뚝이 아기 강아지 포카를 길렀던 경험도, 육아에 도움이 됐다. 오늘을 소중히 여겨야 내일도 즐거울 수 있다는, 그 평범한 배움 덕분이었다. 나리씨가 이리 덧붙였다. "장판과 걸레받이, 벽지를 뜯겼던…나름의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 육아가 더 수월한 게 아닐까요(웃음)."
포카와 마꼬, 여행 갔을 때 함께 산책하는 모습./사진=포카 보호자님
올해 포카는 8살, 마꼬는 4살이 됐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다. 둘은 가까워졌다. 현실 남매처럼 투닥거리지만, 마꼬는 놀이터에서 친구에게 이리 말한단다. "우리 집에 강아지 있어!" 어린이집에서 놀이터에 나온 아이들을 보면, 포카도 혹시 마꼬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며 찾는다고.
작았던 아기가, 어느새 포카보다 키도 더 커지고./사진=포카 보호자님
보호소에서 태어난 포카는, 행복한 하루를 쌓아가며 이리 전하고 있다. 몸이 커도 실내견으로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고. 아기와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나리씨가 이런 바람을 전했다.
마꼬가 아기 때, 울음이 많았을 때 포카가 하고픈 말을 얘기하듯 그림책 위에 올라갔다고. 제목은 '울지 말고 또박또박.'/사진=포카 보호자님
"종, 나이, 크기와 상관 없이 모든 강아지들은 삶의 기쁨과 의미를 안겨줍니다. 이전엔 상상하기 못했던 거지요. 어린이들도 반려견과 함께하며 알게 될 거예요. 가족이 존재할 때의 소중함, 행복이 충만할 때 삶의 의미, 약자에 대한 배려를요.
첫 바다를 둘이 함께 보게 됐다. 제주에서./사진=포카 보호자님
이어 끝으로 이리 덧붙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보호소 동물들이 안락사의 그늘에 있어요. 그들에게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서로 온 곳도, 언어도, 나이가 드는 속도도 다 다르지만 이리 안아 온기를 나눈다. 둘도 없는 좋은 친구라는 거다. 포카를 안아주는 마꼬./사진=포카 보호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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