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아이폰 다 뚫어요"…'마약 환각 파티' 증거 찾은 경찰 경고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 2023.05.21 08:00

[베테랑] 양철진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 디지털포렌식계 분석관(경사)

편집자주 |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양철진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 디지털포렌식계 분석관(경사)/사진=영철진 분석관

"분석관님, 긴급분석 부탁드립니다."

지난 2월초, 양철진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 디지털포렌식계 분석관(46)에게 부산청 강력범죄수사대(강수대) 수사관으로부터 휴대폰 2대와 유심칩 2개를 분석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양 분석관이 속한 디지털포렌식계는 부산청 소속 수사부서와 부산청 산하 15개 일선 경찰서에서 요청한 휴대폰, PC, 태블릿, CCTV(폐쇄회로TV) 등 디지털 증거 분석을 담당한다.

부산청 강수대 수사관이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피의자 2명을 검거한 현장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휴대폰을 압수한 후 증거물에 대한 포렌식(디지털증거분석)을 맡긴 것이다.

양 분석관은 휴대폰에서 성소수자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했다. 피의자는 해당 홈페이지 게시글 중에 '러쉬(Rush) 같이하실분' '랏슈 해주실분' 등 신종마약류 '러쉬'를 같이 투입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2명의 피의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메신저 앱(어플리케이션)에서도 '랏슈하고 같이 노실 분' 등의 대화를 나눴다. 속칭 '러쉬'는 랏슈, 파퍼, 정글주스 등으로 불리 알킬 니트리트류 성분을 포함한 신종마약을 뜻하는 은어다.

양 분석관은 피의자들이 마약류를 함께 투약한 사람과 장소, 구입 경로 등을 특정해 수사관에게 제공했다. 양 분석관과 16명의 동료들이 관련 사건의 가담자와 공범 등의 휴대폰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분석했다.

양 분석관과 팀원들이 분석한 증거물은 호텔과 클럽 등지에서 이른바 '마약 환각 파티'를 벌인 남성 61명을 검거한 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부산경찰청 강수대는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61명을 적발해 주범 A(37)씨 등 17명을 구속송치했다고 지난달 20일 밝혔다. 성소수자 전용 채팅앱 등에서 만난 이들은 마약사범 중 일부는 성소수자로, 전용클럽에서 마약 파티를 벌였고 일부는 에이즈 감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지난달 20일 적발했다고 발표한 마약사범들로부터 증거물로 압수한 필로폰 제조기구들. /사진=부산경찰청


두달 간 마약사건 증거물 분석해 56명 검거 일조…아이폰·텔레그램도 분석가능


부산청이 마약범죄 척결 합동단속을 벌이면서 지난 3월부턴 중요 마약류 사건은 긴급분석을 진행, 48시간 이내에 관련 증거물을 분석해 수사 단서와 증거로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 분석관은 지난 3~4월에 휴대폰, CCTV, PC 등 189개 증거물을 분석해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피의자 14명을 구속하고 42명을 불구속하는 데 기여했다. 길게는 수년에 걸쳐 주고받은 수만건의 문자메세지, 카카오톡, 인터넷 접속기록 등에서 마약류를 뜻하는 은어를 필터링해 확보한 결과다.


지난해 9월에는 부산청 강수대로부터 휴대폰 5대와 CCTV 1대 등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휴대폰에서 외국인들이 한 클럽에서 파티를 하는 영상을 확보했다. 또 페이스북에 접속한 기록을 바탕으로 IP를 확보해 부산·경남지역의 한 모텔 밀집지역에 머물렀던 시간을 특정했다.
경찰과 부산경남 출입국외국인청이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 대해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다. /사진=부산경찰청
관련 증거는 클럽과 노래방 등에서 '마약파티'를 벌인 베트남인 74명을 검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다. 부산청 강수대는 지난해 9월 마약류관리법 등 위반 혐의로 베트남 국적 A씨 등 판매책 5명과 상습 투약자 30명 등 74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SNS에서 '마약 파티' 참가자를 모집한 뒤 각종 마약을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통상 마약사범들은 '아이폰을 쓰면 경찰이 비밀번호를 풀지 못한다'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강해 대화가 유출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양 분석관은 "포렌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텔레그램 대화 중 삭제한 대화도 복구가능한 경우가 있다"며 "아이폰 역시 기종과 OS 버전에 따라서 비밀번호를 몰라도 포렌식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 분석관은 지난 3월 초 필로폰을 투약하고 '던지기 방식'으로 판매한 피의자 아이폰의 텔레그램 대화 내역을 분석했다. 던지기란 특정 장소에 마약을 미리 놔두고 위치를 알려주면 구매자가 찾아가게 하는 비대면 마약 거래 방식이다. 포렌식결과 텔레그램에서 던지기 위치를 표시한 사진과 마약류 투약에 쓴 주사기 사진 등을 확보했다.


기업 전산실장서 디지털 수사관으로…"증거 밝혀내는 데 일조하고파"


양 분석관은 37살이던 2014년 한 기업 전산실장을 그만두고 경찰의 사이버수사 경력경쟁채용에 지원해 사이버 수사관이 됐다. 부산서부경찰서에서 사이버 수사관으로 근무하다 2019년 포렌식 업무를 담당하는 현재 부서로 옮겼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데이터베이스 분야에 특화된 분석관이다. 기업 범죄 등을 수사할 때 현장에 나가 대용량 저장 매체를 압수하거나 범죄 혐의점 구성에 필요한 증거를 추출하는 업무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디지털포렌식계에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분석관들이 협력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증거물을 분석한다"며 "경찰 업무가 힘들 땐 초심으로 돌아가 수사에 관련된 증거를 밝히는 데 일조하겠단 마음으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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