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특히 위험했다. 물가와 환율이 치솟았고 공급망 교란 속에 수출까지 위기를 맞았다. 전 정권이 나라빚을 400조원 이상 끌어다 쓴 통에 운신의 폭도 좁았다.
국정의 동반자가 돼야 할 정치는 지저분했다. 가짜뉴스가 범람했고 진흙탕 싸움에 법안은 줄줄이 발목이 잡혔다. 가히 3D(Difficult·Dangerous·Dirty)로 표현할만한 1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앞엔 또 다른 3개의 D를 완성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 지난 1년 간은 '개념 정의(Definition)'와 '디테일(Detail)'에 집중했다. 이젠 큰 그림의 '디자인(Design)'으로 국정철학과 정책을 연결해 3D의 마지막 퍼즐을 채울 때다.
윤 대통령은 법조인 출신답게 개념부터 정의하며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사에서부터 미국 의회 연설에까지 시종일관 '자유와 연대'를 역설했다.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전제로 한 시장경제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의 지향점은 명확해졌고 외교부터 에너지, 부동산, 복지정책까지 줄줄이 방향을 틀었다. '인기가 없어도 미래세대를 위해 필요하면 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노조개혁을 필두로 3대(노동 연금 교육) 개혁이 시작됐다.
현장을 중시하고 국민 체감을 줄곧 강조하는 것도 디테일 대통령의 모습이다. 취임 1년 간 대통령실을 벗어나 현장을 방문한 횟수만 무려 90여 차례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에 즈음한 기자단 오찬에서 "전기차나 디스플레이 공장, 바이오 제조시설 등을 가보면 앉아서 장관들한테 보고 받고 이러는 것보다 R&D(연구개발) 정책 등을 할 때 쏙쏙 잘 들어온다. 그러니까 가서 현장을 봐야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은 디테일을 숙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역할이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국민에게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권 여당의 전략 수립 역량과 추진력, 이슈 대응력이 아쉬웠다. 졸지에 '전광훈 당'의 오명을 썼고, '공기밥 한 그릇 비우기' 발언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국가적 결단은 희화화됐다.
사정이 이러니 한일관계처럼 민감한 이슈도 세련되게 다뤄지지 못했다. 한미일 안보협력 등 미래를 위한 관계정상화 결단과 디테일을 살린 정상 간 친교는 외교적으로 평가받을 만하지만 국민들에게 그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 주 69시간 근로 논란도 철학보다 키워드 하나가 담론을 지배한 경우인데, 이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아쉬움을 남겼다.
보수정권 청와대 출신의 한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위안부 합의를 앞두고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줄곧 국제무대에서 만나도 눈도 안 마주쳤고 직전 이뤄진 정상회담에서는 밥도 안 먹었다"며 "국민들에게 지도자의 고뇌를 알리면서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정교한 기획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결국 남은 4년, 짧게는 내년 총선까지 1년 간 국민들에게 얼마나 잘 디자인된 국정을 보여주고 철학을 설명할지가 윤석열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국가 지도자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당면 과제나 당장의 변화가 아니라 10년 후, 후손의 미래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라며 "이 철학적 장기 전망이 있어야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당장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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