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도 못 닫았다…청소년 극단선택, '우울증 갤러리' 폐쇄 어려운 이유

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 2023.05.08 17:22
사진=김현정 디자인기자 /사진=김현정디자인기자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를 이용하던 10대 여학생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라이브 방송을 켠 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시도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우울증 갤러리 폐쇄를 건의했지만 방심위는 의결을 보류한 상태다. 폐쇄가 지연되는 사이 청소년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4시쯤 한남대교 북단에서 17살 여학생과 15살 여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됐다. 이들은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알게 된 사이로 사건 당일 SNS를 통해 투신 시도 과정을 생중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6일에도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10대 여중생 한 명이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고층 건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경찰은 이 사건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방심위에 우울증 갤러리에 대한 폐쇄를 요청했다. 해당 갤러리에 '극단적 선택을 할 동반자를 찾는다'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10대 여학생을 상대로 그루밍 성범죄 등이 발생해 범죄의 온상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울증 갤러리는 이전부터 남성들이 10대 여학생들에게 접근해 그루밍 성범죄를 하는 장으로 악용됐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실제 경찰은 갤러리에서 여학생들을 접촉한 뒤 불러내 성폭행한 혐의(미성년자 의제강간)로 '신대방팸' 소속 20대 남성 4명을 입건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하고 있다.


방심위, 폐쇄 보류…범죄 관련 글 비중 높지 않아


/사진제공=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심위가 우울증 갤러리 폐쇄 안건에 대해 '의결 보류'를 결정한 주된 이유는 전체 게시글 중 범죄와 관련됐거나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글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 밖에 법률 자문을 먼저 구해야 된다는 것도 의결 보류 결정 이유로 꼽혔다.

지난 27일 열린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황성욱 소위원장은 "전체 사이트를 폐쇄할 때는 운영 목적이나 불법 게시물의 비중과 반복성 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결정해왔다"며 "현재 경찰청에서 관련 TF팀이 구성됐고 전체게시판 폐쇄에 대한 법률적 근거들이나 유관기관의 협조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성옥 위원은 "전체 게시글의 70% 정도가 불법이어야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체 사이트 차단을 결정할 때 불법콘텐츠가 어느 정도 범위인지를 판단해야 겠다"고 말했다.

방심위는 불법적인 글의 비중이 높지 않아 폐쇄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방심위에 따르면 10대 여중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발생 후 우울증 갤러리를 일주일 동안 모니터링한 결과 불법 정보로 볼 수 있는 글은 15건이었다. 극단적 선택 유발 정보로 규정할 수 있는 글은 5건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도 지난달 21일 입장문을 통해 폐쇄 요청을 거부했다. 기존 이용자들이 타 갤러리로 퍼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우울증 갤러리, 폐쇄 어려운 이유


/사진=우울증갤러리 캡처
방심위는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에 따라 음란한 내용·사행성 정보 등의 불법정보를 유통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정보의 처리를 거부·정지·제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방심위는 불법정보 비중이 일정 수준에 달하면 사이트의 폐쇄를 명령하기도 한다. 폐쇄 처분을 결정하는 법적 근거가 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자살을 목적으로 하거나 이를 미화, 방조 또는 권유하여 자살 충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정보를 유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2018년 청와대는 '일베' 사이트 폐쇄 국민청원에 대해 "불법정보가 전체 게시물 중 70%에 달하면 방심위가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70% 이상이면 폐쇄'한다는 기준은 방심위의 임의 자체 기준이다. 이 기준도 도박이나 음란 사이트처럼 불법성을 전제로 개설된 사이트가 아니고선 적용되기 어렵다.

우울증 갤러리는 도박·음란 사이트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방심위 조사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조장하는 글은 소수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오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분류된다. 방심위 심의를 통한 사이트 폐쇄가 어려울 수 있는 대목이다.


"우울증 갤러리 폐쇄해야" vs "근본적 해법은 청소년 회복"


지난해 5월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중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우울증 갤러리의 폐해가 큰 만큼 폐쇄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엽 고려대학교 기술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험이 현실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조치해야 된다"며 "(우울증 갤러리 폐쇄는) 생명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심위가) 극단적 선택 조장 글이 전체 게시판 중 일정 비율을 넘어야 전체 게시판을 폐쇄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양적인 기준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질적인 기준도 생각해야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교수는 갤러리를 폐쇄하면 청소년들이 다크웹 등 다른 사이트를 이용해 음지화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폐쇄 자체가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하나의 수단이고 불법이기 때문에 빨리 단속을 해야 된다"며 "음지로 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폐지를 하지 않는 것은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겠다는 논리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규제와 별개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체계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울증 등 정실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어른들이 활동하는 곳에 들어가서 악용당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해서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전문적인 기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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