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강국 프랑스가 "풍력 공급망 시급" 외친 이유

머니투데이 코펜하겐(덴마크)=권다희 기자 | 2023.05.09 06:10

[지속가능성의 경제학]③정치와 경제의 교차로, 유럽 풍력 산업

편집자주 | 지난달 23~24일 유럽 풍력협회 윈드유럽·덴마크 스테이트오브그린·그린파워덴마크가 주최해 덴마크에서 열린 프레스 투어 및 같은 달 25~27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윈드유럽 콘퍼런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국에 함의를 줄 수 있는 내용들을 추렸습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안보 제고라는 정치적 동력·에너지 전환으로 산업 활로를 찾겠다는 경제적 동력이 맞물려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입니다. 올해 이 곳의 최대 화두는 풍력발전 확대를 위한 '공급망'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였고, 이 공급망 구축을 지배하는 의제가 '지속가능성'이었습니다. 추상적 구호가 아닌 시장에 의해 가속화하는 지속가능성입니다. 이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들도 직면하게 될 흐름의 일부인만큼, 이 곳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위원회 위원장, 알렉산더 드 크루 벨기에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 마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요나스 가르 스토에르 노르웨이 총리가 2023년 4월 24일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제2차 북해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로이터=뉴스1

"이제 EU는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2.5%*로 늘리는 구속력 있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이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물론 도전이 되겠지만 이것이 EU의 산업 경쟁력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럽연합(EU) 의장국 스웨덴의 에바 부시 에너지·기업 및 산업부 장관 겸 부총리가 지난달 25일 덴마크에서 열린 풍력 박람회 '윈드유럽' 콘퍼런스에서 남긴 말은 풍력발전 '산업'을 향한 유럽 국가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숄츠에 마크롱까지…유럽 8개국 정상, '해상풍력'만을 위해 모이다



유럽 정부들은 정상 차원에서 유례 없이 단일한 목소리로 풍력발전 확대에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24일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제2회 북해 정상회의는 '해상풍력'이라는 단 하나의 의제를 위해 유럽 8개국 정상(영국은 장관급)이 모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지난해 첫 회의에 참석했던 네덜란드·덴마크·독일·벨기에 4개국에 프랑스·노르웨이·룩셈부르크·아일랜드·영국이 합류했다. 이들 정상은 현재 30기가와트(GW)인 북해 해상풍력 발전량을 2030년 120GW, 2050년 300GW로 늘리자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1년 전 첫 정상회의 보다 2배 더 올려 잡은 2050년 목표다.

에너지 정책과 산업기반 차이가 있는 이들 국가가 한목소리로 해상풍력 확대를 주장하는 데엔 공통된 정치적·경제적 필요가 깔려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 안보' 제고가 급박한 과제가 됐다는 게 일차적 이유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데다 연료 비용이 '제로'이며, 지난 20년간 기술발전으로 간헐성이 개선된 재생에너지가 막대한 양의 수입 가스를 단기간에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어서다.

이 동기가 전부는 아니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풍력을 중요시 하는 건, 풍력 산업에 필요한 공급망을 '유럽 안'에 확대하면서 산업 기반과 일자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풍력발전이 광범위한 제조업, 서비스 인프라를 필요로하는 산업이란 특성에서 기인한다. 특히 해상풍력발전 단지를 지으려면 각종 설비 생산시설은 물론 선박, 항만 서비스, 전력망 등 광범위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 공급망을 '유럽 안에' 지으면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환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해상풍력 발전을 가장 먼저 시작한 덴마크의 사례를 보면 1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단지 건설은 장기적으로 약 1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

이 정도 규모의 일자리 창출과 광범위한 제조업 공급망 구축을 함께 노릴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이라는 점은 유럽 정부를 하나로 모으고 있다. 프랑스·스웨덴·폴란드처럼 원자력 발전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현재 풍력을 '기본값'으로 두고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무탄소 발전원 에너지 믹스에 한창인 배경이다. 프랑스 정부의 경우, 2050년까지 풍력에 400억 유로를 투자해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오스텐더 정상회의에서도 "해상풍력 발전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지구 반대편에서 만든 장비를 배치했던 오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서 지정학적·경제적 목적에 방점을 찍었다. '메이드 인 유럽'을 강화해 중국 등이 가져간 유럽 내 공급망 점유율을 되찾자는 의미다. 역시 원자력 발전에 적극적인 스웨덴 정부의 부시 장관은 윈드유럽 행사의 일환으로 오스텐더 회의 다음날 열린 장관급 회의에서 "화석 연료, 특히 러시아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려면 효율적 솔루션의 조합이 필요하다"며 "풍력과 같은 기저부하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의 결합이 공급 안보를 위한 그린 에너지의 비결이 될 것"이라 했다.




프랑스 장관 "풍력 공급망, 유럽 차원 로컬 콘텐츠 기준 만들자"



윈드유럽을 관통한 주제 중 하나가 '공급망'이었던 배경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EU가 달성하겠다는 야심에 비해 공급망이 부족해 풍력발전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거란 위기감 속에, 어떻게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냐에 대한 정부와 시장 관계자의 논의가 이번 행사를 채웠다. 25일 위드유럽 첫날 첫 콘퍼런스 주제가 '유럽의 풍력 공급망 강화하기'였는데, 오전 9시 세션 시작 전부터 인파가 몰려 입장하지 못한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윈드유럽 장관급 회의도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로 채워졌다. 카드리 심슨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유럽 에너지 위원(Commissioner)은 "2030년까지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42.5%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평균 풍력발전량을 늘리고 구조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급망) 병목현상이 해상과 육상풍력 모두에서 프로젝트를 방해하고 있다"며 "새로운 EU 법안은 허가를 더 쉽고 빠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덴마크의 라스 아가드 기후·에너지 및 유틸리티부 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관료주의적 규제를 줄여 풍력발전 사업 허가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면서 공급망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수천 대의 풍력 터빈에 필요한 공급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는 1000킬로미터의 케이블, 많은 선박, 더 많은 변전소,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숙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러한 영역 중 하나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 전환이 지연되고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너무 느려질 수 있다"고 했다.

'메이드 인 유럽' 공급망 구축을 위해 유럽산에 혜택을 주자는 직접적 제안도 나왔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유사하다. 아그네스 파니에-루나허 프랑스 에너지 전환부 장관은 같은 장관급 회의 패널 토론에서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대담해져야 한다"며 "예를 들어 (풍력발전 프로젝트) 입찰에 로컬 콘텐츠 기준을 적용해 유럽 플레이어와 유럽 제조업체에 구체적인 신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이 로컬 콘텐츠가 프랑스 같은 개별국이 아닌 유럽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그는 "우리는 유럽 차원에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한 국가 단위에서 경쟁력을 갖추려 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결정적인 규모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를 갖지 못할 것"이라 했다.

*지난 3월 유럽의회가 합의한 EU 재생에너지 지침에 따르면, EU는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기존 32%에서 최소 42.5%(최대 45%)로 상향 조정했다. 현재 EU 내 재생에너지 비중의 약 두 배다.

4월 25일 덴마크 코펜하겐 벨라센터에서 열린 '윈드유럽' 장관급 회의 중 스웨덴의 에바 부시 에너지·기업 및 산업부 장관 겸 부총리가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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