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회장님, 그 보고 받지 마세요"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 2023.05.04 05:10
3월31일, 의정부지검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1호' 사고였던 양주시 채석장 토사붕괴 사고의 책임을 물어 J 삼표그룹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중대재해법으로 그룹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첫 사례다.

4월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중대재해법의 첫 유죄 판결이었다.

4월26일,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역시 중대재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중대재해법으로 대표이사가 실형을 받은 첫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중대재해법 적용 사건들의 판결이 이어지면서 경영계는 우려했던 경영리스크가 현실화됐다며 중대재해법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며 더 엄한 처벌을 요구한다. 작년 중대재해법 시행에 맞춰 일제히 관련 조직을 만들어 대응해 왔던 로펌들은 회장이 기소되고 대표가 구속되면서 '드디어 큰 판이 벌어졌다'며 내심 반긴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3건의 사례들은 앞으로 이어질 중대재해법 판결에 대한 힌트를 준다. 대표가 집행유예를 받은 온유파트너스와 실형을 받은 한국제강의 차이는 '누범'이었다. 온유파트너스는 동종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이 감안됐지만 이미 인명사고가 발생해 벌금형을 받았던 한국제강은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사고가 발생한 회사의 대표이사 만이 아니라 그룹 회장까지 기소된 삼표 사례는 '회장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남겼다. 검찰은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J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J 회장을 중대재해법상 기소한 것은 그를 중대재해법에서 규정하는 경영책임자로 봤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그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검찰은 J 회장이 그룹의 회장으로 경영의사결정을 내리고 사고가 난 삼표산업의 안전관리도 총괄했다고 본 것이다. 공소장에는 검찰이 그를 삼표산업의 안전관리 총괄로 본 근거가 나열돼 있다.

-2021년 1월, 환경안전본부로부터 사업장 순회점검결과를 보고받음.

-2021년 3월, 협력사 불법 파견을 근절 지시.
-2021년 사업장 안전사고 보고받고 타사를 벤치마킹하고 협력사 일용직을 상용직으로 전환배치할 것을 지시.
-2021년 9월, 모르타르 사업장의 전체 보행자 통로 안전점검 지시.
-2021년 1월, 안전 예산 사용처 관련 회계자료 준비 및 동법 시행령 제정 대비 사전 대비 지시, 안전경영책임자 운영안 확정.

검찰이 적시한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안전관리를 강화하라는 지시다. 삼표는 안전관리를 강화하면서 관련 비용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렸다. 돈벌이에 혈안이 돼 근로자의 안전을 내팽게친 기업인이라면 그가 사장이든, 회장이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장이 안전관리를 직접 챙겼다는 것이 기소의 근거가 된다는게 아이러니하다.

경총은 J 회장의 기소 직후 "회장이 그룹사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핵심 사항에 대한 의사 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룹사 개별 기업의 안전보건 업무를 직접 총괄하고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책임자의 개념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의무주체를 확대해석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논평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 전 회장님들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기업들이 많았다.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이라고 포장했지만 중대재해법상 처벌대상에 오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뒷말들이 많았다.

삼표 사건 이후 로펌의 중대재해법 전문가들은 기업들에게 이렇게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장님, 앞으로 안전과 관련된 보고는 받지 마십시오."
사장님, 회장님들이 더 적극적으로 안전관리에 나서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만든 법이 회장님에게 안전관리에서 손 떼도록 유도하는 현실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김진형 산업2부장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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