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국제통화체제의 분절화 위험

머니투데이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2023.05.04 02:03
장보형 연구위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통화체제가 흔들린다. 미국 등 서방의 고강도 금융제재로 러시아가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비롯해 결제망 재편 등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국 역시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한다. 심지어 달러 기축통화의 한 축을 담당한 '페트로달러'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변심으로 새로운 방향을 시사한다.

현대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던 달러 중심 국제통화체제가 이제 막을 내리는 걸까.

국제통화체제는 일종의 글로벌 공공재로 지불결제나 회계단위, 또 가치저장 수단인 '국제통화의 안정적 공급' 외에도 글로벌 차원에서 실물·금융 연계의 안정, 즉 '대외안정성 보장'이라는 역할도 맡는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경인 글로벌 불균형과 관련해 이를 지탱해온 국제통화체제의 취약성에 관심이 크다. 나아가 달러 중심 체제는 이른바 '글로벌 금융사이클'을 통해 미국의 금융여건, 특히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영향을 국제적으로 확산한다.

따라서 국제통화체제 재편은 일찌감치 세계 경제의 안정성장은 물론 글로벌 금융안정과 맞물려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제기됐다. 바람직하기로는 세계 경제의 다극화와 맞물려 복수의 주요 통화를 포용하는 공동의 국제통화를 세우는 것일 테다. 브레턴우즈체제 설립 당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안한 '방코르'와 같은 초국적 통화 말이다. 특히 최근 디지털 화폐기술의 발전, 또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 실험 등과 결부하면 그 효력은 증폭될 수 있다.


하지만 사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 점차 국제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통화체제의 다극화나 초국적화보다 오히려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 위험이 부각된 것이다. 다시 말해 거래통화 다각화의 편익이나 위기전염 억제 등과 같은 순기능보다 오히려 거래비용과 거래위험 증가, 환율관리의 복잡화, 글로벌 유동성 제약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도 국제통화체제 재편은 대부분 지정학적, 지경학적 갈등과 맞물린 격렬하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특히 거래통화의 편의성이나 각종 정치·경제적 이유에 따른 '필연'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의사결정이나 사태중첩으로 인한 '역사의 우연'을 반영하는 면이 강하고 그만큼 예측불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달러를 공식 기축통화로 삼은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된 이후 역설적으로 달러 지배력이 재공고화한 과정도 이처럼 예측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얼마 전 정부가 우리 경제의 위상강화에도 여전히 낙후된 외환시장의 선진화, 혹은 구조개선을 위한 계획을 내놓았다. 오랜 숙원과도 같은 일이지만 지금처럼 국제통화체제의 분절화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얼마나 내구력을 갖췄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점차 '비전통적 준비통화'의 하나로 부상하는 원화의 위상을 기반으로 국제통화체제 재편이나 그 부작용 규제 등과 관련한 다자중재나 협의를 모색하는 일에도 적극적인 관심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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