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국영화 산업의 위기

머니투데이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 2023.05.03 02:03
임대근 교수
한국영화가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영화산업, 이 중에서도 내수시장의 위기다. 올해 1분기 한국영화 점유율이 29.2%에 그쳤고 극장에 걸린 영화 가운데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선전하면서 400만 관객을 넘긴 현상에 대한 진단이다.

코로나19 발생 직전 2019년 1분기 국내 영화시장의 전체 매출은 4677억원, 2023년 1분기는 2731억원이다. 이 수치만 보면 국내 영화산업의 파이는 코로나19 시대를 넘어 회복 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점유율이 역전됐다. 2019년 1분기 한국영화 점유율은 64%였다.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를 찾기 어렵고 관객을 모으는 영화는 더욱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영화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영화 매출의 위기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국내 영화산업 담론은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에 근거한다. 이 '전산망'은 2004년부터 전국 극장의 입장권 매출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그런데 '전산망'은 극장 입장권만 수집할 뿐 한국영화의 수출이나 부가매출을 아우르지는 못한다. DVD, IPTV, VOD 서비스는 영화산업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부가매출은 '부가'적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영화산업은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 OTT 플랫폼의 등장은 극장 매출만으로 영화산업을 규정하는 관행을 뒤바꿔놓았다.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으로 이어지는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걱정하던 때가 불과 수년 전이다. '기획'과 '제작'이 주도권을 잡고 '배급'과 '상영'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넷플릭스처럼 극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상영 플랫폼은 거꾸로 상영이 주도권을 잡고 기획, 투자, 제작을 장악했다. '역수직계열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산업의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려면 수출이나 부가매출에 더해 온라인 플랫폼 통계까지 포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법률개정과 정책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길복순' '정이' '20세기 소녀' 등의 한국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봉할 때 이를 둘러싼 산업구조를 어떻게 파악할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OTT 플랫폼의 등장은 대기업 중심의 기획과 제작, 상영이라는 계열화, '1000만 영화'라는 한국영화 성공의 지표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우리는 소위 대박을 터뜨려 매출을 독점하는 한두 편의 영화보다 제작비를 지원받고 적절한 이윤을 창출하는 다수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가 온라인 상영 플랫폼에 진입하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국영화산업의 구조를 설명하는 기제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한국영화는 수많은 위기를 헤치면서 자랐다. 1988년 시작된 UIP 직배, 1998년 김대중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06년 노무현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등은 한국영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요인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이런 외부의 충격이 닥쳐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외부의 자극이 내부결속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상상력과 테크놀로지를 실험하면서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영화는 때때로 정체와 불황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코로나19와 OTT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동시대 외부의 충격이 다시 한국영화를 자극한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이번 위기 역시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다만 급변하는 영화산업의 구조에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뿐이다. 위기를 헤쳐나갈 한국영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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