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전기요금 패러독스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3.04.27 04:25
# "왜 이 현안을 여당이 갖고 갔을까요?" 전기·가스 요금 인상 문제를 물으면 정부 당국자는 되묻는다. 생색낼 만한 정책도 아닌데 정치권이 굳이 개입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투다.

여당이 마이크를 잡을 때면 호감용 재료를 손에 들고 있다. 보험료만 해도 인하 대상인 자동차 보험은 여당이 챙긴다. 실손 보험 인상 발표는 정부에 미룬다.

민심을 모른다며 호통 칠만한 주제면 '뜨거운 감자'여도 여당의 관심 사안이다. 하지만 전기·가스 요금은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민·당·정 간담회 형식으로 의견 수렴 등의 모양새를 취하지만 여론은 이미 뻔하다. 여당도 "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되풀이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전기요금 결정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당정협의 사안도 아니다. 한국전력이 안을 만들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한다.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친다.

물가와 요금 인상 사이 힘겨루기가 존재하지만 결국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다. 이 결정을 여당이 가져간 순간 '정무적 판단'이 된다. 이 판단도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대통령실을 바라보는 상황이 됐다. 이젠 '대통령의 결단'만 남는다.

# 전기 요금 문제는 왜곡의 결과물이다. 수차례 다뤄진 왜곡들이다. 탈원전으로 꼬인 에너지 정책이 토대다. 전기요금 인상 지연, 한전공대 설립 등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왜곡을 키운다.

포퓰리즘과 전쟁을 외친 지금도 왜곡은 이어진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정책 '결정' 대상을 대통령의 '결단' 주제로 만들어 버린 게 대표적이다.

시기를 놓치며 시장은 꼬였다. 한국과 미국에 상장된 한국전력 주식은 외면받는다. 공기업의 안정적 배당을 바라는 것도 사치다. 오히려 적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행한 한전채를 산 이들이 웃었다. 한전채 인기가 시작된 게 2021년말, 코스피가 3000선을 넘을 때다. 이 인기도 한풀 꺾인 흐름이지만 한전채는 여전히 금융시장의 블랙홀이다.


한전 적자의 직격탄을 맞은 한전의 대주주 산업은행은 정부로부터 공기업 주식을 받는다. 건전성 지표 개선용 현물 출자인데 땜방에 불과하다. '한전 적자, 한전채 발행, 산은 손실, 정부의 현금 출자'는 과거나 현재나 같다.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에서 배운다"(조지 버나드 쇼)는 말 그대로다.

# 해법 중 하나는 '전기요금 인상'이다. 종합 솔루션이 아닌 단기 처방이다. 이마저도 당정은 전제 조건을 단다. 한전·가스공사의 28조원 규모 자구책 마련이다. '뼈를 깎는' 등의 수식어까지 동원한다.

요금 인상을 위한 제스처라지만 또다른 왜곡을 낳는다. 한전 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반납하면 32조원 적자가 개선될까.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싸다. 주택용뿐 아니라 산업용은 더하다. 통상 마찰을 빚을 정도다. 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산업용인데 마냥 가격 지원을 해 주기 쉽지 않다. 주택용 전기요금만 건드리니 민심이 사나워진다.

발상을 전환해 전력망을 고민하자. 전기 수요가 많은 대규모 공장부터 국가전력망(National grid)에서 독립시켜 독자전력망(Micro grid)을 구축하는 노력이다. 야간 전기를 ESS(에너지저장시스템) 등에 저장했다가 낮에 쓰도록 하는 독자전력망을 설치할 때 보조금을 대폭 지원하는 거다.

'전기 요금 현실화-독자전력망 보조금 지원' 패키지로 전력 수요 분산, 전력 산업 발전, 한전 경영 정상화 등 '일석 십조'를 꾀할 수 있다. 작은 예다. 한전이, 정부가 지금 만들어야 하는 방안은 마른 수건을 짜는 '자구책'이 아니라 '마이크로 그리드 종합 계획' 같은 미래의 그림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결단할 만한 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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