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마약 수사와 김치찌개

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 2023.04.26 05:00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경찰이 우범자들을 정보원 삼아 수사에 도움을 받는 일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물어보니 매우 흔한 일이라고들 했다. 특히 마약 수사는 첩보가 중요해 정보원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사 성패가 갈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관은 '요새 어느 동네에서 누가 뭘 많이 판다던데요?' 같은 어렴풋한 말 한 마디도 수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 말 한마디로 실마리를 얻어 결국 수십명의 마약사범을 검거하게 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양질의 정보원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같은 '비대면' 시대에는 정보원의 존재감이 더 빛을 발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추적하기 힘든 익명 앱을 통해 거래를 하다보니 수사 단서를 잡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위장수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원들이 해 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가뭄에 단비나 다름없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나. 정보원들이 아무 이득도 없이 입을 열지 않는다. 밥이라도 한 끼 사 먹여야 한다. 그런 데 쓰이는 돈이 수사비다. 그리고 수사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넉넉지가 못하다.

현재 마약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경찰관은 "삼겹살은 꿈도 못 꾸고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 정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어 옛날처럼 윽박지르면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자기 지갑을 열 수밖에. 뻔한 경찰 월급에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경찰이 검거하는 마약사범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니 칭찬할 만하다. 경찰이 지난해 검거한 마약사범 숫자는 1만2387명으로 역대 최다다. 2018년에는 8107명을 검거했다. 전국에 수백명 뿐인 마약수사 인력이 말 그대로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을 하려면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다행인 점은 정부가 마약 수사 예산 증액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경찰청과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해 본다.

사회부 사건팀 한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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