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의 고마운 입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04.25 10:34

팬데믹 시절 유튜브 먹방과 노래로 힐링과 위로 선사

사진출처='성시경의 먹을텐테' 방송 영상 캡처


성시경. 대한민국의 가수다. 2000년 사이버 가요제 뜨악 페스티벌 대상을 수상한 후 ‘내게 오는 길’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23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라드 가수다. 이문세, 신승훈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성시경은 요즘 ‘가수’보다 ‘유튜버’로 더 유명하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보여주는 먹방 탓이다.


결국 성시경의 수익 창출 창구는 ‘입’이다. 노래를 부르던 입으로, 이제는 맛있게 먹는다. 혹자는 왜 노래 부르지 않냐고 한다. 그렇지 않다. 그는 최근에도 동료 가수 나얼의 발라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드라마 ‘설강화’와 커튼콜’ OST도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그의 히트곡 ‘좋을텐데’보다 그의 먹방 ‘먹을텐데’로 더 자주 회자된다.


그 사이 별명도 바뀌었다. 타고난 목소리로 발라드를 기막히게 소화해 ‘버터 왕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요즘은 ‘국밥부장관’이라 불린다. 버터와 국밥 사이. 그 간극은 꽤 크다. 물과 기름 같을 수도 있다. 국밥에 버터를 넣어 먹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시경은 이질감 있는 두 영역 사이를 절묘하게 오간다.


성시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성시경 SUNG SI KYUNG’의 구독자는 25일 기준, 133만 명이다. 코너는 크게 5가지다. 노래를 들려주는 ‘성시경 노래’, 먹방을 보여주는 ‘먹을텐데’를 비롯해 ‘성시경의 일본어 강좌’, ‘두두두두두’, ‘성시경 레시피’ 등이다. 그럼에도 적잖은 이들이 이 채널의 제목을 ‘먹을텐데’로 인식하고 있다. 그만큼 파급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사진출처='성시경의 노래' 방송 영상 캡처


성시경의 먹방은 왜 인기가 높을까? 우선 치장이 없다. 하나의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주변 이야기를 잔뜩 펼치는 방송국표 예능과 다르다. 식당이 정해지면 "먹을텐데∼"라는 성시경의 한 소절 노래와 함께 곧장 찾아간다. 섭외도 직접한다. 성시경의 복장 역시 단출하다. 그야말로 ‘집 앞’ 나들이 차림이다. 딱히 헤어 스타일링이나 메이크업도 없다. 그러니 기존 ‘느끼하다’는 이미지의 성시경에게서 느껴지는 부담감이 ‘1’도 없다.


또한 술이 있다. 평소에도 애주가로 잘 알려진 성시경은 주저없이 소주나 맥주를 주문해 들이켠다. ‘이런 좋은 안주에 술이 빠지면 되냐’는 식이다. 그는 예쁘게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먹방 유튜버처럼 많이 먹지도 않는다. 적당히 먹는데,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원래 입담이 좋아 맛을 표현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쉽게 말해, ‘나도 먹고 싶게’ 만든다.


그 덕분에 남성팬이 크게 늘었다. 기존 성시경의 콘서트에 오는 남성팬들은 대다수 여자친구의 손에 끌려 왔다. 공연 내내 팔짱을 끼고 졸거나 성시경을 노려본다. 하지만 ‘먹을텐데’를 보는 남성팬들의 눈에서는 하트가 샘솟는다. 성시경은 "재밌는 게, ‘성시경의 먹을텐데’ 구독자 중 남자가 거의 70%다. 이 형이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국밥과 소주를 맛있게 먹으면서 설명해주는 게 딱 맘에 들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이 형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 댓글에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먹방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여기에 쿡방까지 더했다. 3년에 걸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대를 잃은 가수들에게는 새로운 무대가 필요했다. 성시경에게는 유튜브가 그 대안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리가 음악이랑 비슷하다"면서 "재료를 알고 공부를 해야 더 맛을 알 수 있다. 되게 즐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SNS라는 걸 안 하던 사람이다. 근데 코로나19 때 가수는 무대가 없으면 목숨을 뺏기는 거였다. 그래서 SNS를 시작하면서 원래 좋아했던 노래를 1년 내내 했다. 그때 요리가 되게 많이 늘었다"면서 "요리를 올리다가 코로나19 시기에 비대면으로 세션들이 집에서 각자 녹음을 해서 보내줘서 화면을 찍으면서 믹스를 했다. 그게 막 구독자 100만 명이 터진 거였다"고 덧붙였다.


사진출처='성시경의 먹을텐데' 방송 영상 캡처


하지만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을 마냥 먹방 채널로 보면 섭섭하다. 이 채널의 콘텐츠를 인기순으로 검색해보면 노래 콘텐츠가 1, 2위다. ‘희재’ 라이브 영상이 누적 조회수 673만 회를 기록해 1위다. 나윤권과 함께 부른 ‘나였으면’이 481만 회로 그 뒤를 잇는다. 톱10으로 범위를 넓히면 김조한과 듀엣으로 호흡을 맞춘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384만 회)가 6위다. 물론 그 외 톱10을 채우는 인기 콘텐츠는 먹방이다. 백종원, 신동엽과 함께 대전 태화장과 신림정에 다녀온 영상이 400만∼478만 회를 기록 중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성시경의 채널이 ‘원소스 멀티유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혼밥족이 많아지며 유튜브 먹방을 보는 인구도 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소주 1병 시켜놓고 성시경의 먹방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식사를 즐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먹방을 보다가 귀가 심심해지면 성시경의 노래를 들으면 된다. 음원을 등록해놓은 것이 아니라 성시경이 라이브로 부르는 영상이기 때문에 옆에서 불러주는 듯한 착각도 든다. 물론 이 경지에 이르려면 취기가 적당히 올라야 한다.


물론 욕을 먹기도 한다. 그가 소개한 맛집들에 손님이 몰리면서 ‘몰래 가던 단골’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그는 "드릴 말씀이 없고 죄송하다. 욕도 많이 먹고 선배들에게 연락도 많이 왔다. ‘거긴 건드리지 말라’고"라고 재치있게 사과하기도 했다.


한 영상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한 네티즌이 "이 형은 누군데 여기서 먹방을 하고 있어?"라는 댓글을 달자, 또 다른 네티즌은 "얘야. 이 분은 네가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니란다"라는 대댓글로 타일렀다. 맞다 성시경은 그런 가수다.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이제는 또 다른 분야에 눈뜨고 열심히 파고 있다. 그러니 재미있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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