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여신들이 빚어낸 판타지 정치 드라마, '퀸메이커'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04.17 11:07

김희애-문소리의 폭발력 넘치는 콜라보가 선사한 짜릿함

'퀸메이커', 사진제공=넷플릭스


‘연기력이 권력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퀸 메이커’의 헤드카피다. 주연배우 김희애, 문소리를 비롯해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인과 선거 전략가의 이야기, 여성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현실 풍자와 재벌 비리는 기존 정치물에서 익히 본 그림이다. ‘퀸 메이커’는 여성 캐릭터의 전면 배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진부한 판을 뒤집는다. 총 11부작, 1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만만치 않아 정주행이 버거울 수 있으나 완주 후엔 짜릿한 쾌감이 따른다.


‘퀸 메이커’의 대결 구도는 흥미진진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오너 일가의 리스크를 막아내 재계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은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 황도희(김희애), 이 그룹 계열사인 백화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 해고 문제로 농성 중인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 두 사람은 대립 관계에서 처음 만난다. 그러나 비서실 직원의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각성한 황도희가 오경숙을 찾아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제안하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80일간의 선거전을 준비하면서 오너 일가에 맞선다.


'퀸메이커', 사진제공=넷플릭스


드라마가 그리는 선거전은 후보자들만의 대결이 아니다. 크게는 재벌 대 서민의 구도에서 여러 대립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대기업 오너 리스크 전문가에서 선거 전략가로 포지션을 바꾼 황도희와 시장 후보로 나선 오경숙이 당선 유력 후보인 은성그룹 사위 백재민(류수영)과 최종 대결을 벌이기까지 캐릭터들간의 각축전이 재밌는 볼거리다. 황도희는 은성그룹 손영심(서이숙) 회장, 자신의 자리를 꿰찬 전략기획실 후배 국지연(옥자연), 또 다른 후보자 서민정(진경)의 보좌관인 전 남편 마중석(김태우), 백재민의 선거 전략가 칼 윤(이경영)과 적대 관계에 놓인다.


오경숙의 갈등 상황도 녹록지 않다. 가정보다 사회 활동에 매진하는 엄마가 못마땅한 고등학생 아들, 당내 경선을 준비하면서 맞붙는 3선 의원 서민정, 자신의 입장 때문에 등을 돌리는 서민들까지 선악 이분법을 넘는 캐릭터들이 릴레이를 펼치듯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은성그룹 일가는 갑질 논란, 직원 폭행, 기업 승계 문제 등 현실에서 벌어진 각종 관련 사건들을 재현한 듯한 모습으로 풍자 대상이 된다. 엄마와 딸들, 남편과 아내, 자매끼리의 온갖 싸움이 ‘가관’을 연출한다.


'퀸메이커', 사진제공=넷플릭스


‘퀸 메이커’의 일등공신은 주연배우 김희애와 문소리다. “혼자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그래서 같이 바꾸려고요.” 황도희가 회사 선배 이차선(김호정)에게 하는 말은 이 드라마의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부부의 세계’(2020) 이후 3년 만에 선택한 정치 드라마에서 김희애는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화력 넘치는 연기로 치밀한 복수의 설계자, 지략 넘치는 선거 전략가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 준다. 하이힐, 스카프, 의상 등 패션도 눈에 띄지만 단지 거들 뿐, 김희애의 ‘아우라’는 ‘퀸 메이커’의 품격과 일치한다.



김희애가 연기한 황도희가 극적인 캐릭터라면, 문소리가 연기한 오경숙은 실제 인물들과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캐릭터에 가깝다. 오경숙의 가족 관계나 행보, 에피소드는 노동운동가, 여러 정치인을 합쳐 만든 캐릭터로 현실의 모델들이 여럿 떠오른다. 문소리는 자칫하면 이미지가 분산될 수 있는 인물을 등장부터 친근하면서도 개성 있는 캐릭터로 각인시킨다. 시위·농성하는 연기부터 가정에선 서툰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 불의 앞에선 정의로운 ‘코뿔소’처럼 돌진하는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꿰찬다. 오경숙을 지켜보며 현실 세계로 걸어 나와 활약하면 좋겠다는 바람(판타지)까지 품게 만드니 문소리의 압승이다.


'퀸메이커', 사진제공=넷플릭스


‘퀸 메이커’가 ‘퀸들의 드라마’로 불려야 하는 이유는 두 주연배우와 나란히 힘의 균형을 이루는 여성 배우들 덕분이다. 중견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과 같은 재벌 회장 역을 맡아 권력과 탐욕의 카리스마를 휘두르는 서이숙, 막강한 연기력으로 중반부 에피소드를 무게감 있게 이끄는 진경과 김선영, 김희애와 문소리 곁에서 차분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김호정, 오너 일가의 자매로 등장해 연기로 짜릿한 빅 펀치를 날리는 김새벽과 윤지혜,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번 드라마로 확실히 자리매김에 성공한 옥자연까지 여성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단순히 캐릭터 성 역할 바꾸기를 넘어, 배우들의 촘촘한 연기 향연이 ‘퀸 메이커’를 의미 있는 드라마로 만든다.


두 여성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패 비리 권력을 깨부수는 과정은 언뜻 판타지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상황이 각박한 만큼 이런 드라마에서 잠시나마 얻는 위로가 필요하다. 대사와 연출이 투박하긴 해도 언론 플레이, 정치인 가족을 공략하는 루머 물타기, 정치 유튜버와 댓글 부대 등을 매수한 여론 조작, 무속인의 등장까지 한국의 정치 현실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재개발, 학교 폭력 등 한국 사회에 산재한 문제를 ‘깨알같이’ 반영한 노고는 인정할 만하다.


'퀸메이커', 사진제공=넷플릭스





김희애는 설경구와 함께 정치 드라마 ‘돌풍’(넷플릭스), 문소리는 직장 드라마 ‘레이스’(디즈니+)로 차기작을 이어간다. ‘퀸 메이커’로 드라마판에 ‘워맨스’ 돌풍을 제대로 일으킨 두 주인공과 여성 배우들이 장기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더 많아지기를 전폭 지지한다.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판타지의 줄다리기 시도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드라마도, 선거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어디에 힘을 실어주느냐는 당신의 양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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