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맑은 날, 보굠이가 활짝 웃었다. 강아지도 이리 웃는다. 날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보호자가 있어서, 매일 있어야 할 곳이 더는 유기견 보호소가 아니어서. 가족으로 함께 맞아줄 귀한 사람만이, 이 웃음을 오롯이 볼 수 있을 거라고./사진=보굠이 보호자님 그해, 그러니까 2017년 여름, 보굠이는 경기도 파주 한 유기견 보호소에 있었다.
푹 찔듯이 무더웠기에 '생존 미용'을 해야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털을 깎는 것. 특히나 깎아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이 계절이 다 지나도록 입양되기 힘들 것 같은 녀석들. 입양도 임시보호 문의도 별로 없어, 아마 서너 달쯤 이어질 더위를 보호소에서 견뎌야 할 유기견들.
경기도 파주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당시 보굠이의 모습. 이때 이름은 '복연이'였단다. 개들도 표정이 다 있다. 풀이 잔뜩 죽어 있는 게 느껴진다./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보굠이도 털을 깎아야 했다. 파주 시골 어딘가에 버려졌다가 보호소로 온 유기견이었다. 입양이 상대적으로 더 힘든 중대형견에, 추정 나이는 당시 6살에, 별명은 '선비'였던 하얗고 털큰(털 많고 큰) 개. 그러니 여름나기를 위해 생존 미용이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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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였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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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개라는 게 믿기 힘들만큼 다른 모습의 보굠이. 제대로 된 산책 한 번 못하는 공간에서, 보내야 했을 하루는 또 얼마나 길었을까./사진=보굠이 보호자님 희영씨는 보굠이가 어쩐지 신경 쓰였다고 했다. 연(緣)이 닿아 이어지는 데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 있었을 거였다.
유기견 보호소의 삶. 24시간 중 개들의 자유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단다. 견사 문을 열면, 개들은 통로에 나와 우다다다 뛰고 배변을 보았다. 그 사이 봉사자들이 견사를 청소하고 물을 갈고 밥그릇을 치우는 거였다.
보굠이는 그런데 달랐다고 한다. 희영씨 기억이 이랬다.
"다른 애들은 놀아달라, 예뻐해달라, 간식달라, 뭔가 요청하는데요. 이 아이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고요."
한껏 뛰놀 그 귀한 시간을, 바라보는 데에 기꺼이 다 쓴 아이. 간식이 없어도 자유시간 10분이 끝나면 견사로 돌아가던 착한 아이. 보굠이와의 시간이 쌓일수록, 희영씨는 묵직한 끌림이 생겼단다. 보호소에 들어온지 그 무렵 이미 2년이나 됐다던, 보굠이가 집에 와서도 자꾸만 생각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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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앞둔 어머니의 말, "그게 인연인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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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굠이가 입양된 뒤 가족과 함께한 모습(왼쪽)과 입양되기 전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때 모습. 얼마나 다른 삶일지./사진=보굠이 보호자님 희영씨는 홀로 살았고, 반려동물과 함께해본 경험도 없었다. 업무상 출장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보굠이의 앞날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픈 바람이 커졌다. 적어도 지금 보호소의 삶보다는 그랬음 싶었다.
수만 번을 고민한 끝에 '임시보호 신청서'를 썼다. 그 종이에 보굠이 이름을 쓱쓱 적었다. 무더운 여름이나마 집에 데려가 쉬게 해주고 싶었다. 2017년 8월 5일, 보굠이를 마침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미소가 참 포근하고 멋지다, 보굠아./사진=보굠이 보호자님 "첫째, 다시는 보호소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약속할게. 둘째, 최소 하루 두 번은 산책할게."
한 달 뒤 희영씨 어머니가 뇌종양 수술을 했다. 병원 면회를 갔다. 희영씨는 어머니께 보굠이 사진을 보여줬다. 이 아이를 임시보호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머니 말씀이 이어졌다.
"그게 인연인 거야. 보굠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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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치면 토닥여주고, 보굠이 가방 메고 산책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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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푸르른 잔디밭에서 나란히 앉은 희영씨와 보굠이. 이 평범한 것도 하기 힘들었을, 어느 개에게 찾아온 찬란한 행복./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맘 속으로 입양을 생각하고 있던터라, 희영씨도 결심했다. 그의 생일인 2017년 10월 2일에 정식으로 입양을 했다. 보굠이는 그리 희영씨 가족이 되었다.
웃는 게 정말 예쁘다, 보굠아./사진=보굠이 보호자님 그리고 2023년인 올해까지, 7년째 보굠이와 했던 두 가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보호소로 돌려보내지 않고, 산책을 매일 두 번 시키겠다고 했던. 잘 먹고 산책하니 보굠이 털도 반지르르,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보굠이를 향하고, 보굠이 눈빛은 누군가를 향했을 것이고. 그게 누구인지 표정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다. 웃고 있으므로./사진=보굠이 보호자님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한단 걸 알았다. 큰 소리에 보굠이가 움츠러들 때면, 그때마다 토닥여준다. 유치원 학부형처럼 쬐그맣고 파란 보굠이 가방을 메고, 함께 북촌에서 봄 산책을 한다. 크리스마스엔 눈 위로 발자국을 내며 걷는다. 보굠이의 해맑은 웃음에 배시시 미소가 함께 번지기도 한다고. 그리 매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희영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이 아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요. 하지만 보굠이로 인해 제가 더 행복해진 게 맞지요."
낮잠 자는 보굠이는, 좋은 꿈을 꾸고 있을 거라고./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보호소 봉사를 하며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고. 그러면서 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했다고. SNS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하나다. 어리지 않아도, 작지 않아도, 품종견이 아녀도, 얼마든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단 걸 알리고 싶어서. 그리고 '유기견은 문제 있다'는 편견도 깨고 싶어서라고.
보굠이와 희영씨. 서로 다른 두 존재는, 우연히 이리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 응원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사진=보굠이 보호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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