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 보호소 안 가게 할게"…7년째 지킨 약속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3.04.05 18:00

[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여덟번째, 보굠이] 뛰어노는 자유시간에도 물끄러미…여름이라도 쉬게하려 데려왔다가 '입양'…"어리지 않아도, 작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한 동행…유기견 바라보는 편견 깨고 싶어"

편집자주 | 이제는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견들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에게 반드시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햇살 좋은 맑은 날, 보굠이가 활짝 웃었다. 강아지도 이리 웃는다. 날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보호자가 있어서, 매일 있어야 할 곳이 더는 유기견 보호소가 아니어서. 가족으로 함께 맞아줄 귀한 사람만이, 이 웃음을 오롯이 볼 수 있을 거라고./사진=보굠이 보호자님
그해, 그러니까 2017년 여름, 보굠이는 경기도 파주 한 유기견 보호소에 있었다.

푹 찔듯이 무더웠기에 '생존 미용'을 해야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털을 깎는 것. 특히나 깎아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이 계절이 다 지나도록 입양되기 힘들 것 같은 녀석들. 입양도 임시보호 문의도 별로 없어, 아마 서너 달쯤 이어질 더위를 보호소에서 견뎌야 할 유기견들.
경기도 파주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당시 보굠이의 모습. 이때 이름은 '복연이'였단다. 개들도 표정이 다 있다. 풀이 잔뜩 죽어 있는 게 느껴진다./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보굠이도 털을 깎아야 했다. 파주 시골 어딘가에 버려졌다가 보호소로 온 유기견이었다. 입양이 상대적으로 더 힘든 중대형견에, 추정 나이는 당시 6살에, 별명은 '선비'였던 하얗고 털큰(털 많고 큰) 개. 그러니 여름나기를 위해 생존 미용이 필수였다.



신경 쓰였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 개가


같은 개라는 게 믿기 힘들만큼 다른 모습의 보굠이. 제대로 된 산책 한 번 못하는 공간에서, 보내야 했을 하루는 또 얼마나 길었을까./사진=보굠이 보호자님
희영씨는 보굠이가 어쩐지 신경 쓰였다고 했다. 연(緣)이 닿아 이어지는 데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 있었을 거였다.

유기견 보호소의 삶. 24시간 중 개들의 자유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단다. 견사 문을 열면, 개들은 통로에 나와 우다다다 뛰고 배변을 보았다. 그 사이 봉사자들이 견사를 청소하고 물을 갈고 밥그릇을 치우는 거였다.

보굠이는 그런데 달랐다고 한다. 희영씨 기억이 이랬다.

"다른 애들은 놀아달라, 예뻐해달라, 간식달라, 뭔가 요청하는데요. 이 아이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고요."

한껏 뛰놀 그 귀한 시간을, 바라보는 데에 기꺼이 다 쓴 아이. 간식이 없어도 자유시간 10분이 끝나면 견사로 돌아가던 착한 아이. 보굠이와의 시간이 쌓일수록, 희영씨는 묵직한 끌림이 생겼단다. 보호소에 들어온지 그 무렵 이미 2년이나 됐다던, 보굠이가 집에 와서도 자꾸만 생각났다고.



수술 앞둔 어머니의 말, "그게 인연인 거란다"


보굠이가 입양된 뒤 가족과 함께한 모습(왼쪽)과 입양되기 전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때 모습. 얼마나 다른 삶일지./사진=보굠이 보호자님
희영씨는 홀로 살았고, 반려동물과 함께해본 경험도 없었다. 업무상 출장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보굠이의 앞날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픈 바람이 커졌다. 적어도 지금 보호소의 삶보다는 그랬음 싶었다.

수만 번을 고민한 끝에 '임시보호 신청서'를 썼다. 그 종이에 보굠이 이름을 쓱쓱 적었다. 무더운 여름이나마 집에 데려가 쉬게 해주고 싶었다. 2017년 8월 5일, 보굠이를 마침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미소가 참 포근하고 멋지다, 보굠아./사진=보굠이 보호자님
"첫째, 다시는 보호소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약속할게. 둘째, 최소 하루 두 번은 산책할게."

한 달 뒤 희영씨 어머니가 뇌종양 수술을 했다. 병원 면회를 갔다. 희영씨는 어머니께 보굠이 사진을 보여줬다. 이 아이를 임시보호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머니 말씀이 이어졌다.

"그게 인연인 거야. 보굠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니."



천둥치면 토닥여주고, 보굠이 가방 메고 산책하는 '행복'


어느 여름, 푸르른 잔디밭에서 나란히 앉은 희영씨와 보굠이. 이 평범한 것도 하기 힘들었을, 어느 개에게 찾아온 찬란한 행복./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맘 속으로 입양을 생각하고 있던터라, 희영씨도 결심했다. 그의 생일인 2017년 10월 2일에 정식으로 입양을 했다. 보굠이는 그리 희영씨 가족이 되었다.
웃는 게 정말 예쁘다, 보굠아./사진=보굠이 보호자님
그리고 2023년인 올해까지, 7년째 보굠이와 했던 두 가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보호소로 돌려보내지 않고, 산책을 매일 두 번 시키겠다고 했던. 잘 먹고 산책하니 보굠이 털도 반지르르,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보굠이를 향하고, 보굠이 눈빛은 누군가를 향했을 것이고. 그게 누구인지 표정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다. 웃고 있으므로./사진=보굠이 보호자님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한단 걸 알았다. 큰 소리에 보굠이가 움츠러들 때면, 그때마다 토닥여준다. 유치원 학부형처럼 쬐그맣고 파란 보굠이 가방을 메고, 함께 북촌에서 봄 산책을 한다. 크리스마스엔 눈 위로 발자국을 내며 걷는다. 보굠이의 해맑은 웃음에 배시시 미소가 함께 번지기도 한다고. 그리 매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희영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이 아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요. 하지만 보굠이로 인해 제가 더 행복해진 게 맞지요."
낮잠 자는 보굠이는, 좋은 꿈을 꾸고 있을 거라고./사진=보굠이 보호자님
보호소 봉사를 하며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고. 그러면서 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했다고. SNS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하나다. 어리지 않아도, 작지 않아도, 품종견이 아녀도, 얼마든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단 걸 알리고 싶어서. 그리고 '유기견은 문제 있다'는 편견도 깨고 싶어서라고.
보굠이와 희영씨. 서로 다른 두 존재는, 우연히 이리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 응원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사진=보굠이 보호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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