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비대면 진료와 낡은 운동화(2)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 2023.04.05 04:38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3.3.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인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퇴출 위기에 처했다. 감염병 위기단계 조정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비대면 진료 도입 법안(의료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말이나 5월 초 코로나19에 대한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은 5월11일 비상사태 해제를, 일본은 5월8일 코로나19를 독감과 같은 5류 감염병으로 조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우리 정부도 이 시기에 맞춰 위기평가회의를 열어 위기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출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비대면 진료는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현행 감염병예방법(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심각 단계에서만 의사와 환자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 위기단계가 하향조정되기 전까지 한 달여 동안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되고 관련 플랫폼들은 사업을 접어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1일 비대면 진료 법안을 논의했지만 일부 의원의 반대로 의결하지 않고 보류했다. 안전성과 효용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약사 출신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보건복지위 내에선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등 입법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입법 추진이 난관에 봉착한 정부는 부랴부랴 국회 설득에 나서는 등 진땀을 흘리는 모양새다.

위기단계 조정은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끌고온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권이 이제 와 또다시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문제 삼으며 반대하는 것도 기가 막힐 따름이다. 3년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실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2020년 2월 이후 3년간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1379만명이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국민 3명 중 1명이 비대면 진료를 받았지만 의약품 오남용, 오진 등 우려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비대면 진료 관련 사고는 처방과정에서 단순누락·실수 등 5건에 그쳤다. 일부 의사단체가 비대면 진료의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또 다른 반대논리였던 상급병원 쏠림 우려도 마찬가지다. 3년 동안의 비대면 진료 중 재택치료를 제외한 736만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의료기관의 27.8%에 해당하는 2만76곳이 비대면 진료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93.6%가 의원급 의료기관이었다. 전체 비대면 진료건수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이 차지한 비중은 86.2%에 달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국민 만족도도 높았다. 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10월 비대면 진료 경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3%가 '비대면 진료에 만족한다', 87.9%는 '앞으로 활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읍면지역 거주자의 만족도(65.1%)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검증하고 그 실효성을 입증했는데도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23년간 수차례 반복한 시범사업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인가. 무책임도 이런 무책임이 없다.

사지로 내몰린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라도 처리해달라고 호소한다. 한시적으로 허용된 지금보다 후퇴한 수준이지만 법적 근거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낡은 운동화'라도 신고 뛰게 해달라는 하소연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하는 비대면 진료를 우리 창업가들은 정치권과 기득권에 읍소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식으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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