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의협회관 대회의실에서 이같이 언급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임 회장은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전국에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약 90%는 1년 이내 문을 닫거나, 현재의 소아청소년과의원 간판을 내리고 진료과목을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에 따르면 이 의사회가 운영하는 전용 사이트엔 전체 회원이 약 5000명이고, 그중 활동 회원 3500명 가운데 약 90%가 폐업 또는 전과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진료과목을 바꾸고 싶어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전용 트레이닝센터를 곧 개소해 이곳에서 타 진료과목으로 전공을 바꿀 의사들을 직접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마디로 '전과(轉科) 지망생'을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의사회는 트레이닝센터 오픈을 위해 4월까지 준비 기간을 거쳐 5월부터 장소 섭외, 대관 후 오프라인으로 회원 대상 교육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강사진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신이지만 폐업 후 진료과목을 바꿔 성공한 의사 가운데 선발한다고도 임 회장은 밝혔다.
소아청소년과는 의료수가 체계에 따르면 의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게다가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어 사실상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고 있다. 이들이 환자 1인당 받는 진료비는 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평균 1만7611원으로, 30년간 1만7000원가량에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한 2020~2021년에는 7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국의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은 3247곳이다. 올해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수련병원 64곳 가운데 소아청소년과를 희망한 전공의는 33명에 불과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입지가 좁아진 데에는 ▶저출산 현상 ▶저수가 ▶의료사고·배상에 대한 부담 ▶보호자(부모·조부모 등)에 대한 감정 노동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이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과 선언에 대해 "국민의 소아 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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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데리고 큰 병원으로 우르르…90년대 '도떼기 병원' 현실 될 수도━
소청과가 문을 닫거나 환자 수를 줄이면 진료 대상인 소아와 보호자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단순 발열과 같은 경증 질환도 아동병원,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 의료기관을 찾아야 해 진료 지연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대변인은 "면역 형성이 덜 된 소아 환자는 건강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고, 심한 폐렴이라도 기침·열이 없는 등의 비전형적인 증상이 특징"이라며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 적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호미로 막을 병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아청소년과 환자가 몰리는 2, 3차 의료기관은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 전공의 지원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급증하면 '소청과 엑소덕스(대탈출)'가 가속할지 모른다. 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김포아이제일병원장)은 "90년대 이른바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하던 병원의 모습이 2020년대 재현될 수 있다"라며 "한정된 인력이 더 많은 환자를 돌보게 되면서 의료진은 번아웃(소진)을 호소하고 이에 따라 탈 소아청소년과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필수 의료에 속하는 내과·외과·산부인과 등이 '폐과 선언'에 동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발표가 필수 의료 분야에 팽배한 '조용한 사직'의 기조를 '확실한 사표'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보고 있다. 김이연 대변인은 "이번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를 필두로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다른 진료과도 폐과 선언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 전했다. 이홍준 정책이사는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은 소청과 전문의가 보기엔 사실상 알맹이가 없는 맹탕 대책"이라며 "전문의 확보와 소아 진료 가산 등 실질적인 정책을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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