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소아청소년 환자의 1차 진료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소청과의사회)의 '폐과 선언'은 곧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의미한다.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의료진 부족과 맞물려 자칫 소청과 발(發) 의료 대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만큼 소청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며 '폐과'를 선언했다.
소청과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의 수입은 25% 감소했다. 진료비는 사실상 30년째 동결 상태로, 주요 수입원인 소아 예방접종이 국가사업으로 속속 편입되며 경영난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소청과 의원 662곳이 직원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문을 닫았다.
실제 지역에서는 어렵게 딴 소청과 전문의 타이틀을 버리고 일반과로 전환하는 사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소청과의사회는 "전체 회원 5000여명 중 활동 회원 3500여명 가운데 90%가 폐과와 일반과 전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라며 "소청과 만이 아닌 피부과, 통증 등 다른 진료과목을 맡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청과가 문을 닫거나 환자 수를 줄이면 진료 대상인 소아와 보호자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단순 발열과 같은 경증 질환도 아동병원,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 의료기관을 찾아야 해 진료 지연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대변인은 "면역 형성이 덜 된 소아 환자는 건강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고, 심한 폐렴이라도 기침·열이 없는 등의 비전형적인 증상이 특징"이라며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 적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호미로 막을 병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청과 환자가 몰리는 2, 3차 의료기관은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 전공의 지원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급증하면 '소청과 엑소덕스(대탈출)'가 가속할지 모른다. 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김포아이제일병원장)은 "90년대 이른바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하던 병원의 모습이 2020년대 재현될 수 있다"라며 "한정된 인력이 더 많은 환자를 돌보게 되면서 의료진은 번아웃(소진)을 호소하고 이에 따라 탈 소아과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청과를 비롯해 필수 의료에 속하는 내과·외과·산부인과 등이 '폐과 선언'에 동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소청과의사회의 발표가 필수 의료 분야에 팽배한 '조용한 사직'의 기조를 '확실한 사표'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보고 있다. 김이연 대변인은 "이번 소청과의사회를 필두로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다른 진료과도 폐과 선언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 전했다. 이홍준 정책이사는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은 소청과 전문의가 보기엔 사실상 알맹이가 없는 맹탕 대책"이라며 "전문의 확보와 소아 진료 가산 등 실질적인 정책을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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