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은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노사가 합의해 '더 일해야 할 때 몰아서 하고 일이 적을 때는 적게 하자'는 의도다. 노조가 반대하면 시행할 수 없다. 당사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산업·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탄력적으로 제도를 운영하자는 요구를 담았다.
주 40시간 근로에 12시간씩 추가 연장근로를 하던 것을 월 단위로 바꿔 특정한 주에 69시간 일했다면 다른 주에 35시간만 일하면 된다. 나머지 2주는 52시간이 평균 근로시간이다. '주 52시간'이라는 총량은 변함이 없다. 이를 어기는 것은 불법이다.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것이지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매주 69시간을 일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프레임과 네이밍이 강력하니 "주 69시간이란 노동계의 주장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로 바꾼 상황에서 주 6일을 근무하는 특정 한 주만을 콕 집어 나온 계산"(경총)이라는 지적은 공허하다. 현행 제도에서 선택근로제를 1개월 단위로 하면 '최대 주 129시간 근로'까지 가능하므로 '최대 주 69시간'은 개선된 측면이 있다. 월·분기·반기 등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늘릴수록 그에 비례해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공짜야근', '기절시간표' 등의 표현이 횡행하며 이런 점은 묻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타격을 가하려는 야당이나 정부의 노동개혁이 못 마땅한 민주노총 등은 인화성이 큰 만큼 정치적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개악'이라며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한국노총도 공동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MZ세대 노조(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까지 반대를 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가 됐다.
이같은 정치적 반발과 공세 앞에서 더 이상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정부가 나아가지 못할 경우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규율하는 방식'으로 인한 폐단은 계속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 논의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대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전통적인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설계'된 낡은 법과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근로시간 개편안은 대선 공약이자 노동개혁의 첫 과제다. 좌초되면 단지 노동개혁 뿐만 아니라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동력이 떨어진다. 현실은 그대로고 부작용은 누적되니, 자칫 한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그것이 프레임을 짜서 정치공학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에게 이로울지 모르나 기업과 근로자에게 이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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